| |
| |
| |
제 4장 이데올로기, 인권, 반체제
- 모스크바와 서방세계,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데올로기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답: 사회체제가 다른 나라들간에 이데올로기의 차이 가 있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정치관계가 방해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견 해이다. 동시에 공산당은 긴장완화와 국제협력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으나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심각하고 사상이 투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이 두 가지 개념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가?
답: 평화공존을 둘러싼 레닌주의적 개념의 기본은 사회체제가 상반하는 나라들의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상반 하는 사회체제는 경제구조, 사회적 관계의 성격, 가치관, 이상에 있어 서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데올로기의 영향이라는 것은 그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만 한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지구적 규모에서, 또한 개개의 국가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이 엄연한 사실은 우리가 조작한 것이 아니며 두시할 수도 없다. 다원주의 적 (pluralist)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이 점은 극히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투쟁이 십자군운동이나 마녀사냥으로 변질되면 그
| |
| |
것은 즉각 분쟁을 일으키거나 분쟁을 악화시키는 힘을 갖게 된다. 역사 는 이런 종류의 예를 얼마든지 보여주고 있다. 이데올로기나 사상 일반 이 탐욕이나 권력욕 등 이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을 계기로 하는 행우를 미화시키기 위해 사응되는 경우는 더 많이 발견된다. 스페인의 콘퀴스 타도르 (conquistadors, 16세기 맥시코와 폐루 등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가 구 세 주를 자칭 한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이데을로기와 프로퍼겐더는 또한 특정의 정책, 특히 다른 사회를 전복하거나 약체화시키기 위한 정책수단으로써 사용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이는 전쟁시나 평화시 모두에 해당된다. 냉전은 그 좋은 예로 서 냉전 특유의 이데올로기 투쟁 은 간단하게 ‘심리전쟁’ 이라고 불리 운다. 우리의 견해로는 이런 종류의 프로퍼겐더는 긴장완화나 평화공존과 는 양립할 수 없으며 국가간의 관계를 손상시킬 뿐이다.
- 그러한 프로퍼겐더는 심각한 위협을 가져오는가?
답: 물론이다. 이것은 나만의 의견이 아니다. 국제법은 세정한 종류 의 프로퍼겐더를 금지 또는 제한하고 있다. 그러한 국제협정은 많다. 그 한 예는 미 ㆍ 소 국교수립의 공식적인 기초가 되었던 루스델트 - 리트 비노프 서한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 |
1. 이데올로기와 국제관계
-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답: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이 문제의 범위는 매우 한정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데올로기 투쟁은 때로 확대해석되어서 여러 나라의 혁령 이나 그밖의 형태의 사회변혁에 대한 상이한 태도까지 포함시키는 경우 도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이데올로기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이데올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두 체제 사이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 리는 매우 복잡한 문제, 즉 여러 나라의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 |
| |
때로는 분쟁에까지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긴장완화는 결코 현상유지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정치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평화와 긴장완화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 이러한 변화와 관련한 행동 규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대국 에 있어서는 특히 그러한 규칙이 필요할 텐데ㆍㆍㆍㆍㆍㆍ
답: 일정한 원칙과 규칙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평화공존의 원칙 그 자체가 앞서 말한 대로 혁접을 수줄하거나 반혁명을 수줄하거나 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
- 가치관이 크게 다른 국가들 사이 의 협력 구조 (framework) 를 확대 시키려는 것은 현실적인 생각이 아니지 않을까?
| |
인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답: 아니다. 나는 매우 현실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확실히 우리에게 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요한 공동의 이익도 있다.
그 최대의 이익은 생존하는 것 (survival) 이다. 우리는 평화롭게 공존 하고 상호간의 차이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인권에 대한 개념의 차이를 인정했는데 살 권리, 살아남을 권리라는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서는 두 개의 사희에 공통의 기반이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나머지 권리도 의미를 잃고 말기 때문이다.
- 인권개념에 대한 동서의 인식 차이를 좁힐 수는 없을까?
답: 물론 가능하다. 이 인식의 차이는 두 개의 체제 사이에 불신의 씨 앗을 뿌리고자 하는 서방측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확대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인권에 대한 세계적 합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1948년의유엔 인권선언, 그후 유엔에서의 인권에 대한 모든 결의, 또한 전유럽 안보협력회의의 헬싱키 최종문서 등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세계의 대다수 국가들은 이들 문서 가운데 적 어 도 2개나 3개에 서 명 하고 있다.
-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동일한 원칙이 사람에 따라서 상이하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 |
| |
답: 어떤 원칙도 그런 점이 있다. 인권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그 사람이 속하는 문화적 전통, 전체적인 역사적 상 황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기본 적인 점을 한 가지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인권문제를 둘러싼 전체상황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려 하고 있다. 즉 미국인은 인권에 대해서 세계에서 가장 확고한 거의 유일한 옹호자인 데 반해 소련 등 사회주의 제국은 인권에 반대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두 가지 이미지는 모두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 이 점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대단히 중 한 문제이니ㆍㆍㆍㆍㆍㆍ
답: 알았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도대체 인권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모성애에 반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적 인 상투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명확하지 않으면 안된 다. 소련에 대해서 말하자면 장기간에 걸쳐 인권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어 왔음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혁명에 대한 외국 의 간섭과 나치의 침략으로부터 수호한 것은 실로 인권을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 라 사회적 권리를 인권에 포함시킴으로써 인권문제에 대한 새롭고 보다 폭넓은 접근방법을 개발한 것도 소련이었다.
이 사회적 권리라는 것은 혁명 이전까지는 거의 무시되었으나 소련 국민의 압도적 대다수에게 있어서나 그밖의 나라의 국민에게 있어서나 극히 중요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유엔결의라는 형태로 이 사회적 권리 의 중요성을 인식하기까지는 반세기라는 세월이 걸렸다.
- 사회적 권리의 분야에서는 소련이 서방측보다 진보하고 있다는 말인가?
답: 그렇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혁명 당시의 러시아에서는 굶주리면서 극빈 상태 에서 살아가던 사람들과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문맹의 농민들에게 있어서 사회적인 권리와 자유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권리와 자유란 일할 권리, 굶주림과 아사 (餓死) 로부터의 자유, 주거를 가질 권리, 경작할 토지를 가질 권리, 의료 혜택을 받을 권리 등이었다. 그리고 우선 세계대전에 의해서, 그리고 그에 뒤이은 내전과 서방 열강의 간섭에 의해서 황폐한 나라에 있어 평
| |
| |
화롭게 살아갈 권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이들 권리와 그밖의 많은 사회적 권리는 현재도 소련사회의 가치체계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의 헌법은 언론의 자유, 양심과 신앙의 자유, 출관의 자유, 집회의 자유 둥 통상적인 정치적 권리도 마찬가지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권리와 자유에 대 한 우리나라의 해석은 가령 미국의 표준적인 접근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균형이 잡힌 진지한 접근방법을 취한다면 인권에 대해서 철저하고 유익한 대화는 가능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미국과 서방 전체에서는 이처럼 대단히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가 격렬한 반소 선전운동의 상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 |
언권운동의 정치적 동기
- 그러나 소련처럼 강대한 국가가 출국을 위한 여권을 희망하는 시 민들에 대해서 왜 그처럼 협량한지 서방측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답: 어떤 나라나 정부도 자신들의 이익과 우선순위,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 우 역사적인 전통과 역사적인 경험의 영향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서 말하면,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들의 토지에서 쫓겨나 절멸 직전에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제외한 미국인은 이민 또는 이민의 자손들로 이뤄진 국민이며, 타인의 이주의 자유를 자연권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소련 에서는 접근방법이나 느낌이 다르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련에는 두 차례의 대대적인
출국이민의 물결이 있었다. 첫번째 물결은 혁명과 내전 직후에 일어났다. 이민의 대부분은 새로운 사회의 용서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들은 외국의 간섭군과 협력하여 새로운 소비에트 권력 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운 사람들이었다. 제 2차세게대전 기간중에 서부터 전후 에 걸쳐 일어난 두번째 물결의 와중에서 출국한 자들 가운데는 나치협력자와 전쟁범죄인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그 결과 조국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특수한 태도가 형 성 되었다. 그리고 이민이 라는 낱말은 ‘배 반자’ 와 거의 동의어가 되어
| |
| |
버렸다.
- 그러한 태도는 지금도 일반적인가?
답: 상황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사회주의 제국간의 이주, 다음으로 국제결혼과 가족의 재회, 긴장완화에 따른 정치환경의 변화 등 이 그 원인이다. 그후 당신도 알다시피 이스라엘로의 이주와 이를 구실로 삼은 서방으로의 이민이 늘어 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솔직 이 말해서 이주하는 사람들 은 지금도 모범적 시민이나 애국자라는 평가는 결코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당신도 이의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 무슨 뜻인가?
답: 소련으로부터 미국에 이주한다는 것은 가령 네덜란드로부터 미국 이나 영국으로 가는 것과는 다르다. 이 나라를 떠나 서방으로 간다는 것은 많은 곤란과 시련 가운데서 태어나 발전되고 지켜져온 소련의 사회 적 가치와 이상의 모두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 또한 일반 민 중에 어떤 감정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미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같은 말을 할 수 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서 유럽과 캐나다에의 이주 결정은 관대하게 처리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웃사람이 소련이나 독일민주공화국 (동독) 으로의 이주를 체획하고 있음 을 알았을 때, 과연 텍사스 보안관과 중서부의 작은 마을에 사는 선량 하고 경건한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상상하기 바란다.
전반적으로 어떤 나라에도 좋든 싫든 관계없이 출입국에 대해서 모종 의 규제조치가 있다. 가령 미국은 입국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데, 입국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출국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못지 않은 인도적 인 문제이다.
- 언젠가 유토피아가 실현되지 않는 한 규제조치가 전부 폐지되지는 않는다는 뜻인가?
답: 물론 만물은 유전한다. 사물은 변화하는 것이다. 나는 국가간의 이주를 규제하는 조치가 모조리 없어지는 때가 언젠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이 문제를 신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 |
| |
이 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과제를 고려해야 하며, 이 과제를 선전의 카드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 달아야 한다. 동시 에 출국문제에 대 한 소련의 규제조치와 규칙은 실제로 수년 전에 미국이 시작한 인권운동 의 핵심적 문제는 아니 라고 확신하고 있다.
- 무슨 뜻인가?
답: 인권운동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소련에 압력을 넣어 반소 여론을 일으킴으로써 세계에서의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미국 국내에서 외교정책을 둘러싼 콘센서스 (합의) 를 피복하는 것이 그 목적 이다. 인권문제 그 자체는 카터 정권이 그처럼 신경쓰고 있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독재정권을 가장 관강하게 지지하는 나라임이 드러나는 경우 가 종종 있다. 캄보디아, 이란, 니카라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독재정 권이 타도되면, 미국 정부가 분노하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까닭은 무엇 인가?
- 그러나 워싱턴이 인권을 어떻게 해석하든지 인권문제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답: 물론 중요하다. 소련은 인권을 웅호하고 확대하는 데 찬성이다. 이는 소련의 이데 올로기, 법룰, 전체 세계관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을 둘러싼 수사 (修辭) 가 미 ㆍ 소관계에 불신과 적의를 날조 하고 긴장완화를 손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인권 그 자체와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다. 숭고한 이담을 곡해하고 악용하는 것이다.
미국인은 인권을 그처럼 강력히 추구하고 있다면 당연히 긴장완화도 동시 에 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이 해하도록 노력 해야 한다고 생 각한다. 전쟁과 전쟁준비, 국제긴장과 위기, 이것은 모두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를 가장 저해하는 요인들이다.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초의 매카시주의자들의 마녀사냥도 냉전이 라는 상황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미 국은 ‘동원된 사회 (mobilized society)’ 라고 말한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사회학자 다니엘 델 (Daniel Bell) 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였기 때문에 한창 긴장이 높았던 시기에 ‘외
| |
| |
부의 적’과 싸우기 위해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파괴활동과 심리전 등 냉전을 목적으로 개발된 작전기술은 모두 그 후 미국인 자신에게 향해져 엘리트 계층의 정적들까지 그 표적이 되었음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폭로한 대로이다.
그런데 워터게이트 사건의 ‘연관공 (鉛管I)’ 들이 법정에서 직업에 대 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한순간 머뭇거린 뒤 ‘반공주의자다’라고 답변한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백악관이 냉전 제 2 판을 발행하고 있는 지금, 동일한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냉전 라입의 상황에서는 칠레와 파키스탄, 엘살바도르와 같은 정권은 시민의 자유에 대해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데도 여전히 미국의 원조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 |
공격강화의 구실
- 비록 인권문제를 우려하는 미국의 태도가 철저하게 정치적 동기에 기초한 이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소련은 왜 미국이 지적하고 있는 소련의 약점 몇 가지에 대한 생각을 고침으로써 미국의 허를 찌르거나 ‘무장해제’ 시키려 하지 않는가?
답: 약점에 대한 생각을 고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고치지 못할 것이 다. 이 인권운동이 란 소련에 끊임없이 압력을 넣고, 또 이 압력을 점점 강화함으로써 소련의 국내 질서를 서방의 마음에 들게끔 변화시키고 동 시에 국제무대에서 소련의 신용을 실추시키려는 시도이다. 이 점을 을 바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 하나의 요구는 때로 매우 온당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가령 누구 누구를 석방시키라든가 (비록 그들이 소련 법률에 의해 엄정한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누구의 출국을 허용하라든가 (거부의 이유는 대개 그들이 이전에 기밀정보를 알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혹은 서방의 정기간행물의 수입이나 관매절차를 개선하라는 둥의 요구가 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의 어려운 경험을 통해 양보할 때마다 그 이 상의 으구와 압력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는 실로 당
| |
| |
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권운동을 조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요구는 인권에 대한 진지한 우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제도와 가치관에의 공격을 강화하기 위한 구실이기 때문이다. 소련의 제도를 파괴하기 위해 실제로 전쟁을 벌인 시대도 있다. 그리고나서 냉전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인권운동 등의 새로운 책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은 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방측에 대한 소련의 피해 망상적인 태도의 표현은 아닌가?
답: 맹세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내가 인권운동 그 자체를 중시하고 있다고 생 각하지 말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이 운동만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인권운등은 특정의 군사적 노력, 외교상의 책략, 그밖의 선전 행 페인을 배경으로 해서 보아야 한다. 가령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문서 NSC - 68 등 마국외교정책의 기본문서 가운데에서 우리나라 국내 제도 의 근본적인 개혁이 평화공존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상 기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의 미국 외교정책상의 대부분의 행동은 이러한 지침을 반영한 것 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정치의식의 근저에는 소련이란 것이 신이 아닌 악마에 의해 만들어졌다, 무언가 불변적인 것이며, 현재와 같은 형태의 존재는 어떻게해서든 종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가 아직 도 살아있는 것이다.
-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답: 그렇다면 한 예를 들어보자. 미국 의회가 매년 7월에 기념식을 갖는 ‘피절령민족주간’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둣이 대 통령은 스스로 엄숙한 선언에 서명하는 것이 몇 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왔다. 그러나 그 진의는 두엇일까?
미국에서의 많은 해설에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의 의견으로는 소련은 14개의 공화국을 불법 점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 공화국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광대한 시베리아 (DVR이라고 호칭되고 있다)와 ‘(체르케시아 (Cherkessia)’, ‘이델 - 우랄 (Idel - Urals)’ 및 ‘카자키아 (Kazakia)’ 가 여기에 포함되고 있다. 이 묘한 지명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감(感)으로 말한다면
| |
| |
우랄, 볼가강 하류, 쿠반강 유역, 돈, 북코카서스 등의 지명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바꿔 말해서 우리에게 남는 지역은 북은 레닌그라드에 서부터 남은 모스크바까지, 서는 스몰렌스크로부터 동은 블라디미르까 지라는 이야기이다.
만약 소련 최고회의와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미국의 주권이 가령 보스 턴에 서부터 워싱턴까지와 볼티모어에서부터 디트로이트까지의 지역 이외 에 미치는 데 의문을 표시하고, 나머지 지역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 하는 챙폐인을 지지하는 엄숙한 성명을 발표한다면 미국인은 어떤 반응 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남부의 모든 주 (州) 는 오로지 전쟁에 의 해서 합중국에 머물러 있는 데 불과하고 그밖에 프랑스와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주도 있으며, 애당초 모든 토지는 최대의 피점령민족인 아메리 카 인디언으로부터 도둑질한 것 이라고.
- 그러나 미국인은 대부분이 ‘피점령민족주간’ 을 무시하고 있다. 왜 그것을 그처럼 심 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답: 우리는 결코 그러 한 주간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테마를 매듭지음에 있어서 논점을 정리해두고 싶다.
첫번째 논점은 소련이 인권문제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것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어왔고 앞으로도 거둘 것 이다. 소련이 아직 이상적인 상황에 도달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 나 도대체 누가 그러한 수준에 도달했단 말인가? 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키는 것은 소련의 기본적 인 목표이다.
두번째 논점은 인권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이 시작한 선전 캠페인은 실 제에 있어서 인권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캠페인을 반 소정책의 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소련이 여기에 굴복할 것 이라는 환상 을 가져서는 안된다.
서방측이 이 문제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기대하는 것은 소련의 사회 정치제도의 파괴를 목표로 하는 반공 ㆍ 반소활동에 우리 자신의 손을 빌 리자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회제도를 블안정하게 만드는 일에 협력할 생각
| |
| |
은 없다. 그것은 소련이 미국정부에 똑같은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협력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번째 논점은 미국의 캠페인이 특히 수상쩍게 보이는 것은 미국에는 기본적 인권에 대해서 다른 나라에 이래라 저래라 가르칠 하등의 권리 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아다.
미국에 그러한 권리가 없다는 것은, 다른 많은 문제가 그렇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자기 나라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미 국의 매스컴이 저토록 거대한 민간기업이 되고 강력한 이윤동기로 운영 되며 국민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사주 (社主) 의 취향과 광고주의 이익에 영합하기에 이른 현재, 미국식의 언론자유에 가치 가 있다고는 믿가 어려운 것이다.
미국에서는 매스 미디어에 접근할 수 없으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아두리 외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도리어 동 남아시아에서의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은 젊은이들같이 FBI 와 CIA 의 감시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 우리, 소련사람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련한 CIA 의 위법행위에 대한 의회의 조사에 관해서도 읽었다. 존슨 대통령이 에드가 후버 (J. Edgar Hoover, 전 CIA 국장) 를 이용해서 공산주의자와 과격파뿐만 아니라 존경할 만한 의 원까지도 감시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리처드 닉슨은 정적 (政敵)
의 명단까지 작성시켰다. 만 약 미국의 정부당국이 필요하다고 생 각하면 사람들을 협박할 뿐만 아니 라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러한 일은 가령 블랙 팬더스 (Black Panthers) 의 지도자들에게 일어 났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경찰의 손에 냉혹하게 살해되었던 것이다. 또한 마르린 루터 킹으르부터 버논 조단 (Vernon Jordan) 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민권운동 지도자들이 살해되거나 부상당한 암살사건에 대해 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더구나 이들 사건에 대한 책임자들이 처벌된 예가 거의 없다.
켄트주립대학 사건 (1974년 5월 4일 켄트주립대학에서 미국의 캄보디아 침 공에 반대하는 데모대에 군이 발포, 4명이 죽고 9명이 부상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메리카 인디언운등은 어찌 되었는가? 선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몇 년 동안이나 복역한 수많은 흑인운동가들에 대해서는
| |
| |
어떤가?
미국이 인권문제의 교사라는 데 대해 한충 회의적이게 만드는 것은 실 로 이러한 사건들 때문이라는 점에 당신도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 |
불쾌한 추억
- 동의하지만 그러한 놀라운 예가 있다 하더라도 프랭크 스네프 (Frank Snepp) 와 같은 반체제파의 CIA공작원이, 미국인이 베트남 둥 에서 범한 죄를 폭로한 책을 출판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다. 소련에서 는 이런 종류의 출판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답: 프랭크 스네프의 책은 몇 년 전까지는 출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발행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프랭크 스네프는 확실히 책을 출 판했으나 CIA는 재판을 통해 보복했다. 그 결과 스네프는 고액의 벌금 을 지불받았다.
1980년에 의회가 가결한 법률의 결과로서 스네프와 같은 사람들은 점 점 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우려된다. 비밀폭로의 경향이 중지되고 말 조짐은 많다. 정보기관과 비밀경찰의 지위에 최근 변화가 일어난 것 은 과거 로의 회귀이다.
한편 소련을 문제로 삼을 때에는 소련의 치안기관의 활동이 매우 엄 밀한 조사를 받고 수정되었음을 잊지 말라. 더구나 이것은 CIA와 FBI 가 아직 신성시되고 있던 무렵의 일이었다. 50년대에 소련 공산당은 치 안기관이 법을 위반하고 권력을 남용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치안 기관의 고관이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유죄로 밝혀진 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았고 사형당한 자도 있다. 이들 기관은 재편되고 당의 효과적인 관리 하에 놓여졌다.
서방의 주요 보도기관이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때는 명백한 이중기준 을 적용하고 있다. 소련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도,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는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동시에 서방에서의 인권침해는 언제나 과소평가되고 예외로 간주되고 있다.
- 미국 사회의 폭력을 옹호할 생각은 없으나 미국 국민은 지금까지 ‘수용소 열도’ 와 같은 경험은 하지 않았다.
답: 소련 국민이 블쾌한 추억을 지니고 있는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에
| |
| |
대해서 반소선전의 상투적인 문구를 사용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당하지 도 않거니와 좋은 취미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언급한 대로 당은 상황을 시정하고 죄를 범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강력한 조치를 취 했다. 그러나 당신이 이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에 강조해두고 싶은데 스 탈린 시대의 탄압을 가능케 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시 우리나라 가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적대적인 환경이었다.
- 나치 독일의 위협 말인가?
답: 나치의 위협은 아마 그 최대의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황 은 이미 그 전부터도 험악해지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1917년의 혁명 이래 끊임없는 정치투쟁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반 혁명세력은 항복하려 하지 않고 더러운 전쟁을 계속했으며 의국으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받고 있었다. 우리나라 지도자와 대사가 몇 명이나 암살 당했다. 거듭되는 외국의 무력침입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외국의 정보 기관이 정력적으로 활등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만간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며 당 연한 일이지만 히틀러가 반공, 반소를 기치로 내세워 세력을 장악한 이 후부터 대외환경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러한 특수한 역사적 대외조 건 하에서 대량탄압과, 우리나라 헌법 및 이상에 대한 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시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잊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잊어 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반대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 전체를 이러한 사건에 비추어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소련 국민에 게 있어서 이들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저 곤란한 시기에도 전혀 달랐 다. 소련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참으로 역사적인,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성과를 많이 거두었다.
우리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발전을 이룩했다. 모든 문명국의 국민 가운데 가장 억압받고 착 취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재생했다. 나치 독일을 패배시켰고 인류에 대 한 그의 위협을 제거했다. 매우 중요한 많은 일을 처음으로 달성했다.
경제계획, 민족의 평등, 남녀동등권, 전국민에 대한 의료 ㆍ 교육의 실 시 둥 사회적 발전, 그밖에 많은 일들이 그것이다. 소련의 역사에는 자
| |
| |
| |
2. 사회주의 발전의 댓가와 성과
- 사회체제의 차이로, 발전에 드는 코스트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비교한 일이 있는가?
답: 그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인류의 역사란 것은 매우 복잡, 다 양하며 수량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종류의 비교에 대한 방법론은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 쪽이 발 전의 코스트가 높은 것은 틀림없다.
우선 첫째로 자본주의체제 하에서의 전쟁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술, 특히 군사기술을 추구하는 내재적인 충동적 욕구에다 시장과 원 료의 공급원을 확보하려고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겹쳐 전세계 적인 규모의 전례없이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킨 것은 자본주의뿐이다. 실로 이 때문에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둘째로 식민주의는, 자본주의 이전부터 있었지만,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자본주의국가의 급속한 발전과 부의 축적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여기서도 수백만 명의 목숨이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잔혹한 착취와 식민지전쟁 그리고 정치적 억압이라는 댓가를 치루었고 인류의 대다수를 후진적 상황에 묶어 두었다.
세째로 자본주의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와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 아 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많은 나라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치형태를 취해 왔다. 유혈폭력을 수반한 파시즘, 군부독재, 그밖에 다양한 형태의 잔인한 전체주의 둥어 그것이다.
- 그러나 미국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파시즘의 길 을 걷지 않았다.
답: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테러, 잔혹한 억압 및 착취와 전혀 무관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이 매사추세츠주의 조그마한 정착지에 서 세계 2 대 초대국 가운데 하나로 발전하기 위해서 지불한 인명의 희 생은 방대하다.
| |
| |
노예무역과 남부 플랜테이션에서의 공포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슬 럼가에 이르기까지 흑인에 대해서 범한 죄악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혹 은 인디언의 대량학살은 어떤가? 미국인들이 어떻게 이 대륙의 선주 (先住) 민족에 대해 저지른 짓과 관련한 양심의 고통에 둔감할 수 있는 지 나로서는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역사의 이러한 페이지를 상기시키는 것은 미국인을 모욕하기 위 해서가 아니다. 미국인이 아직 고칠 수 있는 점은 고치고 일부 정치인 들의 도덕교육열을 냉각시키기 위해서 바로 이러한 사건들이 기억되어 야 한다고 생각한다.
- 레이건 정권이 최근 인권문제로부터 국제테러의 방지로 역점을 옮 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그 한 이유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중점을 옮긴 것은 전 (前) 정권의 인권정책이 미국과 전체주의의 일부 동맹국과의 관계에서 역효과 를 낳았다는 점을 인정한 거나 다름없다. 현정권은 전세계적인 반소동 맹의 결성이라는 노선을 내세우고 악당일지라도 우리 편은 우리 편이라 는 낡은 격언대로, 미국이 이끄는 반소십자군에 대한 엄밀한 충성 이 외의, 동맹관계를 판단하는 그밖의 모든 기준을 격하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점은 특히 미국이 최근 잔혹한 전체주의 정권과와 관계를 긴밀화시키고 있는 사실에 해당된다. 미국은 최근 매우 좋은 취향이라 고는 할 수 없으나 서둘러서 이들
정권에 ‘온건한 억압 (moderately repressive)’ 이라는 재세례명을 주었다.
- 다시 말해 중점을 옮긴 것은 현실적인 이유에서라는 말인가?
답: 이데올로기적 요소도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소련은 지구 상에 있어서 악마의 본거지이며 모든 말썽거리를 일으키며 테러와 파괴 활등에 의해 반제국주의적인 모든 사회변혁을 조종하고 있다는 원시적 인 견해를 부활시키려 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자와는 달리 현재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인 권정책에 별로 열성을 쏟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인권을 중요한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 들이 인권문제를 둘러싼 천박하지만 맹렬한 선전 캠페인을 벌이는 데 장 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 |
| |
| |
소련 평가의 두 가지 견해
- 과거 수십 년 동안에 소련에서 일어난 변화의 범위와 의미를 평가 함에 있어서 서방측 소련연구자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지 케난과 제리 호그 (Jerry Hough) 라 는 학자는 소련이 지난 25년 사이에 현저한 변화를 이룩했기 때문에 서방측은 전통적인 대소관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리처드 파이프스나 아담 울람 (Adam Ulam) 은 이와 정반대로 소련은 스탈린 시대와 기본적으로는 같고, 제도상 의미있는 변화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답: 어떤 나라도 지난 25년간 변화했지만 소련과 같은 역동적인 사회 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이다. ‘제도 상의 변화’ 란 무슨 의미인가? 우리나라가 점점 성숙해가는 정치체제를 갖고 소련공산당이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 에는 변함이 없다. 이 점이 파이프스와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면 그들은 그러한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우 리가 미국의 정치제도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 는 것과 전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파이프스와 같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소련 국내에서는 개인숭배의 영향이 일소되고 민주주의가 한층 발달 한 결과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외교정책에서는 일부 소련연구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본적인 목표와 방법 면에서 훨씬 계속성이 있었다. 스탈린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갖는다 하더라도 스탈린의 외교정책이 신 중했다는 점, 스탈린이 모험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우선 부정할 수 없다. 보다 진지하고 통찰력 있는 미국의 소련연구자들은 이 점을 인정 하리라고 생각한다.
- 월터 라커 (Walter Laqueur) 는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을 모르고는 근대사에 대해서 지적인 는의를 할 수 없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구축된 사회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 아니며 발전도상국에 있어서도 그 렇다. 가령 쿠바에서는 20년간이나 마르크스 ㆍ 레닌주의가 실천되었
| |
| |
으나 현재 피델 카스트로의 모범을 부분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은 오 직 니카라과뿐일 것이다.
답: 내가 보는 바로는 니카라과 혁명은 독자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 다. 월터 라커는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 하는지 모르지만 라커 개인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입 각한 사회는 격렬히 적대시하고 있다.
소련의 예가 매력적인지 어떤지에 대해 말하자면, 서유럽의 국가들에 는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입각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을 지지하는 강력한 공산당이 많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핀란드가 그렇다. 그 밖의 나라들에도 공산당은 존재하고 있다. 이들 공산당은 아직 당원수 자체는 많지 않지만 서유럽 제국의 국민들 사이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문제에는 또하나 다른 측면이 있다. 공산당이 승리하여 새로운 사 회의 건설을 시작한 나라들이 매우 곤란한 객관적 조건에 직면하는 일 이 매우 많았다. 이러한 나라는 통상 러시아와 폴란드, 유고슬라비아와 같이 전쟁에 의해서 큰 피해를 받은 나라들이다. 또한 대부분이 후진적 인 경제를 가진 나라들이었고 역시 러시아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이 그러했다. 베트남, 쿠바, 알바니아와 같은 발전도상국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에 더해 서방측은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사회의 건설을 방해하기 위해 군비경쟁을 강요하거나 파져활동과 경제봉쇄를 실시하는 등 가능 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마지막 측면으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곤란은 불 가피하다는 점이 있다. 그러한 복잡한 사업에는 항상 과오가 있게 마련 이며 때로는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고 려에 넣는다 하더라도 사회주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는 큰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 매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매력이 쇠퇴했음은 당신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 쿠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1980년에 많은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탈출한 것은 쿠바형의 사회주의가 미국의 자본주의 앞에서
| |
| |
는 맥을 못쓰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답: 쿠바의 적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관계없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건은 쿠바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기보다는 사회주의 제국의 ‘인 권응호’ 를 일삼는 서방사람들에게 블리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쿠바 를 떠난 사람들의 상당수가 범죄인이나 불만분자들이라는 점은 시사적 이지 않은가? 그들이 없어진 것을 쿠바인들은 기뻐할 것이다.
이 사건이 비극적인지 아니면 우스운 일인지는 판단하기 곤란하지만, 쿠바 사회주의를 고발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특히 미국이 쿠바혁 명 이후 쿠바에 대해 경제봉쇄와 개입공작 둥 많은 곤란을 조성해왔다 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사실 쿠바는 지금도 많은 경제적 곤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쿠바 를 어떤 나라와 비교하면 좋을까. 스웨덴인가, 스위스인가. 굳이 비교 한다면 비교대상의 지역으로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또는 혁명 전의 쿠바가 적당할 것이다.
이런 나라들과 비교하면 쿠바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중 남미전역에 걸쳐 쿠바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며 이 나라의 지위는 높다.
| |
소련사회의 정체에 대해서
- 소련형을 포함한 사회주의의 성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든 간에 소련은 많은 점에서 여전히 서방측에 뒤떨어져 있다.
답: 몇 가지 점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아직 일부 상품이 부족한 실정 이며, 상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품목수도 서방측보다 제한돼 있다. 서 비스에도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으며 전반적인 생활수준도 일부 국가보 다는 낮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당신의 솔직성에 경의를 표한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기 바란다.
답: 이러한 결점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이들 결점 이 주로 소련의 곤란한 역사에 의해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 국 민은 역사의 대부분의 시기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곤란한 상황 속에서 살아왔고 최저한의 필수품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소련의 책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련은 후진적인 사회를 물 려받은 데다 혁명 후에는 외국의 간섭과 경제봉쇄, 이어서 히틀러와의
| |
| |
절박한 전쟁에 대비한 대규모의 준비, 그리고 그 전쟁에 의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재난, 그것에 이은 냉전, 의국으로부터 강요된 군비경쟁 둥 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련은 소비재산업 발전의 지체와 농업, 주택건설, 소매거 래, 서비스 분야에서의 만성적인 투자부족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이들 분야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국민일반의 특수한 태도에도 직면 하게 되었다.
겨우 최근에야 이러한 전통을 극복하는 일에 착수했으나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 그러나 서비스는 여전히 매우 민약하다.
답: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생활의 쾌락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직 10년이나 20년밖에 되지 않은 터에 무엇을 기대하려고 하는가?
- 생활의 쾌락이란 무슨 뜻인가?
답: 소련과 서방 제국의 생활수준을 비교할 경우, 늘 명심해야 할 점 은 소련 국민이 서방의 평균적 시민이 아직도 입수하기 어려운 많은 것 들을 이미 몇십 년 전부터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무료의 교육 과 의료, 고용의 보장 등이다.
소련 국민은 이러한 것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칫 이를 잊는 경 우가 있으나 소련으로부터 서방에 이주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서방측에 이러한 것이 없는 점에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등시에 일가족이 전용 아파트에 사는 것이 들어보지도 뭇한 사치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겨우 최근의 일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즉 나 자신의 예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나 는 1958년에 처음으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받았다. 당시 나는 이미 잘 알려진 저널리스트로 행세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처와 아직 어린 아들, 그리고 장모와 함께 사방 약 4m짜리 방 하나에서 살았다. 그 아 파트의 나머지 9개 방에는 30명 이상이 살았고 부엄과 목욕탕은 공용이 었다. 대단히 쾌적했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불만이라거 나 불행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 사람 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겠지만 나와 동세대의 인간들은 굶주림이란 것이 무엇인지,
| |
| |
즉 단지 단백질과 비타민의 부족뿐만 아니라 진짜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체험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에 찬 생활을 대부분의 인간들 이 실제로 함께 나눈 결과 일정한 행동양식이 형성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매사에 대해서 금욕주의가 모랄이 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가 령 결혼기념 금반지나 네타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몸에 지니는 것은 정당치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도 있었다.
- 네덜란드가 나치에 점령돼 있는 동안 우리도 틀립 뿌리를 먹은 때 가 있었다. 이런 일을 상기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답: 고통과 때로는 미소와, 그러나 동시에 긍지를 갖고 회상한다. 왜 냐하면 우리는 존엄성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참았고, 존엄성을 잃지 않고서 극도로 곤란한 역사를 헤쳐왔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이야기는 옛날을 기억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개탄 하는 노인들의 좋은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은 세계 어느 나 라의 노인들에게도 해당되겠지만 말이다.
소련 국민은 이제 생활의 사치품을 더욱 많이 요구하고 있다. 이는 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생활이 향상되었음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리라 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
사회주의 대차대조표의 흑자
- 소련이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일부는 곤란한 역사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사회주의의 생산기구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가?
답: 아니,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동시에 가치관에 큰 차이가 있다 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국민도 스스로의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고 선택한 뒤에는 결과에 대해서 불평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선택한 하나는 가령, 완전고용의 보장과 사실상 해고를 불가 능하게 만든 피고용자의 권리 보장을 포함해 가능한 한 완전한 사회적, 경제적 보장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노동의 강도, 따라서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 은 사실상 도산의 우려가 없는데, 이러한 사실은 관리자들의 근무태도
| |
| |
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이러한 사실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우리는 이들 장 점을 견지하는 한편으로 노동생산성올 높이고 정신적 ㆍ 물질적 자극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라나 지금 내가 지적한 모든 것 은 실제 어떤 종류의 영향을 머치고 있다. 국민은 생존을 위해서, 즉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만 경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좋은 일인가, 나 쁜 일인가? 소련 국민의 과반수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은 분 명하다고 생각한다.
- 사회보장의 댓가는 지나치게 크지 않은가?
답: 우리는 타당한 댓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이 방법을 선택 했으며 그에 대한 댓가를 치를 태세가 되어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무리하 게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강제할 생각이 없다.
- 그러한 태도에는 소련의 이데올로기적인 이유가 일부 있다고 생 각된다.
답: 그렇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집산주의 (collectivism) 에 중점을 두 고 있다. 집산주의라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 사이에 조화가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집단의 이익은 개인의 직접적 인 이익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도 당연하고 불가결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국인의 대다수 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인 개언주의 (individualism) 와 좋 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 미국인은 개인주의가 스스로의 자유를 지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답: 그것은 우리의 화제로부터 크게 벗어나는 철학적인 대문제이다. 자유의 기본적 정의에 빠져드는 것은 피하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 하는 데 그치고 싶다. 개인주의는 미국의 역사속에서 강력한 자극제가 되어왔으나 그 대차대조표는 점점 차변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인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댓가로서 소외의 확대, 사회의 분열, 경제, 사회, 정치조직의 무정부주의적 경향의 증대, 범죄와 마약중독 및 폭력 둥 반사회적 행위의 증가라는 희생을 치르고 있다.
| |
| |
- 두 개의 사회체제를 비교한 결과 전체적인 수지계정에서는 사회 주의 쪽이 유리하다는 결론인가?
답: 그렇다. 우리는 사회를 합리적으로 조직하지 않는 한 참다운 개 인의 자유는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다. 공산주의의 궁극적인 이상은 개개인의 개성을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목표는 사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조직된 사회기구 하에서 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자본주의는 특히 경제분야에서 몇 가지 현저한 성과를 거 두지 않았는가?
답: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두 개의 체제의 종합적인 경제실적을 평가 할 경우, 많은 요소를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안된다. 즉, 과거의 성과, 발전의 속도, 곤란한 제약 하에서의 달성능력 둥이며 동시에 두 개의 체 제가 현재와 장래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검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본주의는 많은 물건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생산하고, 시장을 소비 물자로 가득 채우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점에 대해서도 중앙집중적 계획과 생산시설의 공유에 기초한 체제가 자본주 의에 필적할 수 있으며 필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차나 팬티스타킹이나 추잉검뿐 만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교육, 의료, 환경보호, 에너지 자원의 절약, 공공수송, 대도시 생활의 조직 등을 점점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서 전통적 자본주의 체제는 좌절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체제는 그 결점 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보다 더 잘, 그리고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있 다. 더구나 이러한 사회적 필요는 최근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 |
3. 반체제에 대해서
- 항구적인 화제가 되고 있는 대외인식의 문제로 되돌아가자. 미국 인의 대소인식의 평균적 수준을 대단치 않게 평가하고 있는 듯한데ㆍㆍㆍㆍㆍㆍ
답: 아직도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 상태이다. 나 자신이 경험한 일에
| |
| |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가령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들은 사람들조차 소련의 현대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 그들은 알택산더 솔제니친의 이름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ㆍㆍㆍㆍㆍㆍ
답: 물론 그것은 필독서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도 다 소 한물 갔다. 그밖에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한 번은 체호프의 이 름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위대한 작가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소련의 작가는 아니다.
- 고리키는 어떤가?
답: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아무나 좋으니 소련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미국 문학에 대해서 물어보면 몇십 명의 이름을 델 것이다. 나는 결코 에드가 알란 포우나 마아크 트웨인 둥 고전적 작가와 테오도 어 드라이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월리엄 포크너, 업톤 싱클레어 둥 유 명한 작가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트루먼 캐포티 (Truman Capote), 테네시 월리엄 즈 (Tennessee Williams), J.D. 설린저 (Salinger), 커트 보네거트 (Kurt Vonnegut), 조이스 캐를 오티스 (Joyce Carol Oates), 존 업다이크 (John Updike) 둥 많은 미국의 현대작가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정 확히 번역되어 널리 읽혀지고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는 미국문학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제 3 세계의 문학, 특히 외국에서 출판된 가치 있는 문학에 대해서는 같 은 말을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지식, 즉 미국사회의 성격이라든가 역사에 대한 소련국민의 평균적 지식은 미국인의 소련에 대한 평균적 지식보다도 높다고 생각한다.
| |
미국 저널리즘의 성격
- 프라우다지 충편집장인 빅토르 아파나시예프 (Victor Afanasyev) 는 소련 신문이 미국에 대해 게재하는 정보는 미국의 소련관계 보도의 3배는 된다고 나에게 확언하였다. 그러나 헝가리의 경우는 14배나 될 것이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형가리를 방문했을 때에만 부다페스트 는 수백 명의 서방 저널리스트로 북적대었지만.
답: 매스컴 활동의 방식도 두 체제 사이의 큰 차이 가운데 하나이다.
| |
| |
우리는 정치적인 문제나 사건에 대해서 반드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 또는 이해할 것인 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포함해서, 배경자료를 독자들에게 상당히 많 이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서방측에서는 종종 소련의 저널리즘과 뉴스 보도자세는 불 공정하며 지루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답: 그 점은 구별할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나 서방측이나 능력있는 저널리스트와 그렇지 않은 저널리스트, 질이 좋은 뉴스보도와 질이 나쁜 뉴스보도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자와 편집자, 발행자의 능력과 그밖 의 개인적 자질이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반적인 스타일의 차이도 있으며 이 점의 차이는 오히려 사회제도의 차이에 의 한 것이다.
서방, 특히 미국의 저널리즘은 센세이션, 그것도 부정적인 것에 편향 되어 있다. 정상적인 국가관계는,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 지만, 분쟁과 다틈에 비하면 훨씬 뉴스가치가 적은 것이 상례이다. 이 점, 우리나라에서는 공업, 농업제획의 달성 상환이나 문화행사들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소련에 주재하는 미국인 저널리스트들은 분명히 고전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재난이나 사고, 살인사건, 또는 성추문 등에 대해 지면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습관적인 판단기준으로는 보도할 거리를 별로 발견하지 못 하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인 기자들에게는 동정을 금치 못한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미국인 기자들은 반체제 인사들과 ‘지 도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을까’ 에 대한 루머에 병적이고 집요한 관 심을 가지게 되는지도 모른다.
- 그러나 미국인 기자들은 실제로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 소련에 서 뉴스라고 생각되고 있는 것만 써야 한다면 아두도 그것을 보도하 려고 히지 않을 것이다.
답: 그 점은 이해하나, 우리나라에는 객관적으로 보아 특정한 종류의 복잡한 문제가 있다. 또한 소련측으로서는 서방의 저널리스트들이 관심 이 있는 지역에 여행하거나 에너지 관계 등 서방측에 특히 흥미있을 법 한 일을 하고 있는 부처의 장들과 회견하는 것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어
| |
| |
주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왔다는 점을 말해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러한 노력은 때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고 때로는 그렇지 못 한 경우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소련에 주재하는 서방 저널리스트의 사명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방측에 도달하는 소련에 관한 정보 가운데 상당량을 진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얼마간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복잡하다. 내 견해로는 서방과 그 보도기관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 선의 가 있다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선의뿐만 아니라 강한 책임 감도 필요할 것이다.
| |
외국의 이익이 되는 반체제파
- 미국 의원단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당신이 받은 인상을 말해 주기 바란다.
답: 그들은 각각 사고방식이나 경험이나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다. 최 근의 양국간 의회교류의 발전은 그 자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최근 수년간 많은 곤란을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블구하고 이 상호방문은 성공한 분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방문을 통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은 상당히 진전되었다. 의견교환은 거의 제도 화되었다. 미국의 정책변경 때문에 이제 이 제도가 시들해진다면 그 결 과 양국 관계는 악화되고 쌍방에 큰 손실이 될 것이다.
- 모스크바를 방문한 미국 의원들은 소련의 반체제파와 만나는 것을 중시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일부 저널리스트들은 이것을 그들의 최 우선적인 과제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답: 미국 의원들과 그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반체제 인사와 만 나는 것은 상례적이고 좋은 소일거리가 되고 있다.
- 모스크바를 방문한 네덜란드 국회의원 한 사람은 반체제 인사와 만나기 위해 한밤중에 영빈관 문을 뛰어넘어 빠져나갔을 정도이다.
답: 나는 미국 등 서방의 의원대표단과 몇 차례 만났는데 솔직히 말해 서 이 사람들의 야간행동까지는 관찰한 일이 없다. 때로는 미국 의원대 표단에 앞서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의 반체제 인사와의 회담을 준비하
| |
| |
기 위해 미국의 기관으로부터 선발대가 파견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방문자들로부터, 그러한 회견이 적당한지 어떤지에 대해 조회 를 받을 때면 나는 대개 미국측 단장에게 가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공식적인 소련 의원대표단이 블랙 팬더라든가 푸에르토리코인의 무장조직이라든가, 인디언 활동가 둥, 미 국정부에게 박해받고 있으나 우리가 실제로 공감하는 점도 있는 단체들 과 일정을 벗어나, 더구나 때때로 비밀리에 만날 계획을 세웠다면 당신 들은 어떻게 대응하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 그들은 어떻게 대답하는가?
답: 납득할 만한 대답은 전혀 듣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반체제 인사들과 만나는 것을 중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미국 정치인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반체제 인사와 ‘리퓨즈니크’ (refuseniks, 출국 비자의 발급을 거부당한 사람들) 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신의 선거구에 이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특히 그렇다.
- 그런데 소련최고회의 대표단이 워싱턴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답: 있다. 지금까지 1974년, 78년의 2회, 공식대표단이 간 적이 있다. 단장은 외교위원장인 보리스 포노마레프 (Boris Ponomarev, 소련공산당 중 앙위원회 서기. 정치국원 후보) 였다. 그밖에도 좀더 소규모 그룹의 방문도 있고 최근에는 79년 초에 간 적이 있다.
- 반체제파의 문제는 여전히 동서관계에 상당한 곤란을 초래하고 있 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 소위 반체제라는 것은 소수 그룹이다.
- 정확하게 어떤 규모인가?
답: 내가 알고 있는 한, 최근 10년 사이에 그러한 사람들이 수백 명 나타났다. 그 가운데는 순수하게 정치적 ㆍ 반체제분자뿐만 아니라 가장 활동적인 리퓨즈니크, 과격민족주의자 그룹과 위법활동을 하고 있는 종 파지도자 둥이 포함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요구와 계획 및 불만을 지 니고 있다. 그들이 재판이나 행정조치의 대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서방 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국민적 합의와 다른 생각을 갖고
| |
| |
있기 때문은 아니다.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흑은 라틴어의 dissident라는 낱말의 본래 의 미대로 ‘떨어져 앉기 (sit apart)’ 때문에 국가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소련의 법룰을 위반하는 길을 선택할 때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실행할 경우에 국가는 대항조치를 취한다. 이러한 그 룹의 최근의 특징은 외국의 시민 및 조직과 긴밀한 연계가 있다는 점이 다. 그들은 외국의 보도기관에 의존하며 실제로 외국 보도기관을 위해 일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재정적 원조를 포함해서 외국으로부터 각 종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반체제 분자들의 동기가 서방측에서 어떻게 해석되든, 우리나라에서 는 그들이 외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광범 위한 여론의 인식이다.
- 헬싱키에서의 전유럽안보협력수뇌회의 최종선언을 소련이 준수하 고 있는지 여부를 감시하는 그룹은 어떤가?
답: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의 행동을 은폐하기 위해서 그러한 연막을 선 택한 것이다. 그들의 진정한 주요 목적은 소련에는 소비에트 국가와 소 비에트 사회에 반대하는 광범한 정치운동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서방측 에 안겨주기 위한 자료를 외국의 언론매체에 제공하고 또한 서방측 보 도기관을 통해 소련에 흘러들어가는 루머나 메시지에 의해서 소련대중 을 교란시키고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려는 것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우리나라의 법률을 무시하고 있다. 서방측에서는 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종류의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소련시민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서방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련의 정 부와 정치제도 전체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러한 분쟁 이 어떤 결과를 초래함이 없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 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
서방측의 동기는 인도적인가
- 서방 사람들을 우려케 만드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종종 체포되 거나 재판에 회부되거나, 장기형을 언도받거나 유형에 처해지거나 하 는 일이다.
| |
| |
답: 그들의 행위는 때로는 소련의 법률상 범죄가 되는 것도 있다. 그 리고 범죄는 언제나 처벌받게 된다.
국가보안위원회 의장이 최근 밝힌 바 있지만 불법적인 정치활동과 관 련해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의 수는 현재,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적다. 그러한 케이스가 전혀 없으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 나 만약 서방측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인도적인 동기에서 행동하고 있다 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확신을 갖고 말하지만 가령, 서방측의 조직적인 지원과 선전이 없다면, 또한 서방측이 반체제 분자를 후광으로 장식하려는 짓을 하지 않는 다면 - 그 때문에 그들은 순교컴플렉스를 갖게 되고, 형장으로 향하는 성녀 잔 다크의 분신인 듯이 자임하고 있다 - 즉, 이런 류의 선전이 일 절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들의 대부분은 법에 도전하는 일도, 곤란한 상 황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 달리 말해서 반체제파가 곤란에 빠져 있는 책임의 일부는 서방측 에 있다는 뜻인가?
답: 서방에는 중대한 책임이 있다. 서방측이 반체제파를 격려하고 지 원하기 때문에, 반체제파는 자신들의 행동이 낱낱이 전세계에 보도되며 철저하게 행동하면 노벨상까지도 탈지 모른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 이미 정신적 안정을 잃고 있는지 모르지만 - 정부와의 대결이나 법를과 극한 대립을 벌이는 행동으로 떠 밀려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어 조만간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이것이야 말로 서방의 반소주의자들 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결말일자도 모른다. 이것을 보고 그들은 손을 비 틀면서 ‘순교자’ 들에게
동정하고 그리고 일제히 소련을 비난할 수가 있 는 것이다.
만약 서방측이 진정으로 인도적 문제로서 일부 소련 시민들의 운명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 왜 그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가? 그러나 만 약 서방의 캠페인 목적이 소련에 최대한의 타격을 가하는 데 있다면 왜 거짓눈물을 중지하고 탁 까놓고 말하지 않는가?
반체제파 옹호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사람들은 단지 소련당국에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우리나라 내부에 모조 반대세력을 육성
| |
| |
하고 소련이 경찰국가라는 이미지를 조성하려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 리고 마지막으로는 국제긴장을 완화하고 군비경쟁을 억제하는 시도를 분쇄하기 위해 서방 내부에 소련에 대한 적의의 씨앗을 뿌리려는 것이 다. 그러한 행동은 서방측의 정보기관과 소련으로부터 이주한 자들의 민 간기관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미국측의 입장에서 보면 사태는 전혀 다르 게 보이지 않을까?
답: 그렇다면 나는 미국인들에게 소련인의 입장에 서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만약 미국 주재 소련저널리스트가 웨더 언더그라운드 (Weather Underground) 같은 비밀 집단의 멤버와 협력하기 시작했다면 미국 인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만약, 다니엘 엘스버그가 미국에 있는 소련 표와 접촉하고 있다면, 재판에서 무죄가 될 것인가?
만약 아메리카 인디언이 정부에 반대하여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있을 때 소련이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아 메리카 인디언에 깊이 동정하고 있으나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내정간 섭 이라고 간주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사람들과 조직은 그 경우 외 국세력의 대리인으로 간주되지 않겠는가?
- 당신이 말한 대로 반체제파의 수가 그처럼 적다면 이 사람들을 완 전히 무시하든가 아니면 국외로 내쫓는 편이 현실적이지 않은가?
답: 실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히 리퓨즈니크의 경우 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만약 이러한 해결방법에 한걸음 내 닏으면 더욱 큰 압력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인물의 이름이 거론되고 잡음이 커진다.
일부 리퓨즈니크는 선동을 받아서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서방의 보 도기관이 어떤 경우를 ‘뉴스가치가 있다’ 고 해서 취급하면, 모든 일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2배, 3배나 격렬해지는 것이다.
- 이러한 인권문제의 토의를 끝마침에 있어서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답: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권문제는 중요하기 때문에 파 괴적인 목적이 아니라 건설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으면 안된다 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고 가장
| |
| |
중요한 권리가 아니겠는가? 인권에 대한 논쟁은 올바르고 양심적인 접 근방법에 의해 긴장완화를 손상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평화와 긴장완화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권을 전세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불가결한 수단인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