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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긴장완화의 시련과 정확한 인식의 가치에 관하여
- (올트만스) 1970년대는 긴장완화의 10년이었다. 1980년대는 제 2 차 냉전의 10년이 될 것인가?
답: (아르바토프) 숙명론적인 입장이 되어서 10년간을 아예 잘못된 것 이었다고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전반적인 국제정세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냉전이 가져다주는 적대행위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을 찾아내어, 긴장완화가 정상상태로서 확립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금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제 2 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20년간 국제관계를 지배했던 불신과 적대와 대결이 냉혹하면서도 오히 려 정상적인 상태이고, 긴장완화는 비록 그것이 환영받을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일시적인 일탈이라고 받아들여지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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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환상
- 그렇다면 도대체 진정으로 ‘정상적인’ 상태란 어떤 것인가?
답: 나로서는 가능하다면 명쾌한 답변을 하고 싶다. 즉 국제적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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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 협력의 추진, 군축의 진전 등을 기준으로 볼 때, 현상은 정상상 태에서 이탈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적어도 ‘정상상태’ 의 정확한 의미를 정의할 때까지는 그렇게 단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가 자연적 상태를 말하게 되면, 가령 체온이 정상이니까 몸은 건강하다,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없다는 식의 의미에서 본다면 긴장완화 쪽이 정상적인 상태이고, 냉전은 그렇지 않다고 분명 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 (normal)’ 이라는 것을 ‘통상적 (usual)’ 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즉,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아무런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극히 보통의 상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코르크가 물에 뜨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이것을 가라앉히려고 한다든지 흑은 공간으로 들어올리려고 한다면,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을 그 만두면 코르크는 또 ‘정상적’ 상태로 돌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유감스럽게도 긴장완화는 아직 국제관계의 정상 적인 상태가 되어 있지는 못하다. 긴장완화를 유지하는 데에는 아직도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반면, 긴장을 부활시키는 데에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 바꾸어 말하면, 긴장완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생겼다는 말인가?
답: 아니,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긴장완화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긴장완화가 장 애에 부딪힌 것은 노력이 모자랐던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장애에 부딪힌 진짜 요인은 긴장완화를 위험한 이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반대노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꼬집어 말하자면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의 미 국 외교정책의 변경으로 긴장완화는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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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사건과 소련 위협론
- 이 부분을 읽으면 미국의 독자들은 크게 화를 낼 것이다. 현재와 같이 사태가 악화된 결정적인 요인은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답: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우리들의 행동이 서방측의 반감과 비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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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을 블러일으키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행해져야지, 감정에 솨우되어 서는 안된다.
미국측의 공식 주장은 현재의 국제관계 악화의 원인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말이 안된다. 소련은 미국의 신정책을 냉 전으로 가는 커다란 후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결정이 아프가니스탄 사태 훨씬 이전에 내려졌다는 사실 하 나만 보아도 미국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 그것은 어떤 결정을 가리키는 것인가?
답: 금후 15년 동안 군사예산을 매년 늘려나가자고 한 북대서양조약 기구(NATO)의 결정 (1978년 5월, 워싱턴), 군사계획 확대와 유례없는 군 사비 지출을 목표로 하는 ‘5개년계획’ 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결정 (1979년 11월), 그리고 신형의 미국제 중거리미사일을 생산해 이를 유럽에 배치 키로 한 NATO의 위험하기 이를데 없는 결정 (1979년 12월, 브뤼젤) 둥 이 그것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전에 미국은 실질적으로 군비제한회담을 동결했다. 제 2차 전략무기제한협정 (SALT II)의 비준은 1979년 9~11 월에 이미 상당히 의문시되고 있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워싱턴 당국 은 중국과의 성급한 화해를 시도했다. 1979년 늦가을에 미국은 항공기 와 핵무기를 탑재한 수많은 군함을 페르시아만에 보냈다. 그것이 단순 히 테헤란의 미국인 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한 것이며, 미국의 외교정책 과 군사태세의 전반적 변화의 일환이 아니라고 우리가 믿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소련에서는 1979년 12월 중순에 이미 미국이 급격한 정책전환을 취하고 있다고 보았다.
- 바꾸어 말해서 미국의 정책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가?
답: 그것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 만일 긴장완화가 정상적으로 진전했다면, 그래서 당신이 지금 지적한 문제점들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 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답: 아마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내 말을 정확히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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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달라. 즉 군대를 파견한 것이 미국이나 서방측의 무례한 행동을 ‘벌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과 NATO가 만들어낸 위협이나 정세에 대한 우리들의 새로운 평가와 보다 깊은 관련이 있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프라우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제한된 군대파견의 결정은 결코 쉽사리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1979년 말 훨씬 이전부터 누차에 걸쳐 소련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소련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말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세계 전체, 특히 그 지 역에서의 국제긴장이 급속히 격화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아프가니스탄의 혁명정권에 대한 위협과 소련의 안보에 대한 위협은 긴장완화 상태에 있어서의 그것보다 훨씬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 아프가니스탄 사건은 미국이나 그 동맹국을 정말로 놀라게 했다. 소련의 의도를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터 대통령은 소련의 의도를 신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강조했디. 따라서 당신이 앞서 언 급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경이란 것은, 소련의 위협증대라고 해석된 것에 의해 야기된 일인지도 모르며 이것은 뒤에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의해 확인된 것이 아닌가?
답: 솔직히 말해서 ‘소련의 위협’을 입에 담는 것이 세뇌된 보통사람 이 아니라 책임있는 정치가나 전문가인 경우, 나는 그들이 소련이나 소련의 군사력 흑은 소련의 의도보다도 오히려, 미국이나 미국의 정책 혹 은 미국의 군사적 태제 그리고 세계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들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현실, 그리고 현재의 힘의 균형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치 소련이 미국을 도발해서 행동하게 만든 것처럼 보이게 할 바에는 차라리 미국 의 외교, 군사정책에서 당치도 않는 요구를 하는 쪽이 훨씬 편리할 것 이다. 우리는 사물을 그런 식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어느 누구도 미국이 외교정책을 강력하게 만들도록 도발하지 많았다. 오히려 미국은, 얼마동안 조직적으로, 스스로 흥분한 나머지 소련이나 외부세계 전반과의 관계에 대해서 현재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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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과거 수년에 걸쳐 소련이 군사력을 엄청나게 강화해온 것 도 부인할 수 없는데.
답: 그렇다. 우리들의 힘은 확실히 강해졌다. 자기 나라의 방위를 소 중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디. 그리고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큰소리로 외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같은 우리의 노력이 공격적인 목 적을 위해서라기보다 방위 목적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 그러나 NATO 는 소련의 전력 증강이 합당한 방위 요건을 웃돌 고 있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답: ‘너희는 어찌하여 이웃의 눈에 있는 먼지는 보면서, 너희 자신의 눈에 있는 기둥은 생각하지 않는가?’ (마태복음 제 7 장 3절: 역자주) 나는 가끔 의문을 느끼는데, 만일 미시간주의 북쪽에 약 1백만의 바르샤바 조약 군대와 약 1천 기의 핵미사일 발사대가 배치되어 있고 한편 덱사 스주가 멕시코와 경계를 접하고 있지 않고 핵무기로 무장되어 있으며 그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기 짝이 없는 10억 인구의 나라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면, 미국의 정치가나 장군들은 자기들의 합당한 방위력이 얼마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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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강경노선의 진정한 이유
- 당신 말대로 만일 소련의 위협이 없다면 미국이 최근 강경노선을 취하게 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미국의 권력 엘리트 내부 의 분위기와 힘의 균형을 변하게 만든 것, 또 하나는 그러한 변화를 실 제 정책에 반영시키게 한 그 나라의 정치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엘리트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변화의 주요 원인은 세계정세의 새로운 현실에의 적응이 어려웠던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새로운 현실이 미 국에 있어서 여러가지 문제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고, 미국 외교정책 의 매우 실질적인 재구축을 요구했다. 이 현실은 전후 한 시대의 획을 긋는 미국의 정치적 행동양식에 일관된 지침, 개념, 규범과의 결별을 미 국에 요구했다. 2차대전
직후, 전쟁에 의한 참화나 희생을 면한 미국은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한 국가로 우뚝 서는, 보기 드문 시대를 경험했다. 당시 그러한 상황은, 세계가 ‘미국의 세기’를 향해서 곧바로 나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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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인상을 낳았으며, 미국은 거의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으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 압도적인 힘으로 억압 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케 했다. 그같은 역사적 상황은 특수하고 일시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많은 미국인은 그것이 매 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 많은 미국인은 이제 그러한 환상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답: 버린 사람도 있지만, 버리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한 환상과 결 별하기란 무척 어려운 것이다. 1980년의 대통령선거는 그 점을 매우 확실하게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거는 ‘미국의 세기’ 에 대한 향수가 매우 강하게 작용했다.
권력 엘리트의 분위기 변화로 화제를 옮기면 또 한 가지 점, 즉 국제 긴장의 완화가 어쩐지 미국의 정치적 의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염려가 엘리트에게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1972 년 최초의 미소정상회담이 끝나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돌아갔을 때의 에피소드를 환기시키고 싶다. 그때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의 가슴 속을 메우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나? 키신저가 그의 회고록에서 증언했듯이 그것은 기쁨도 만족도 아니고, 지금부터의 군사계획에 국민의 지 지를 동원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또 그밖의 많은 종래의 정책을 추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염려였던 것이다.
대체로 미국의 정책입만자들은 아주 어렵게, 온갖 걱정에 싸여, 더구나 여러가지의 조건을 붙여서 겨우 긴장완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60년 대 말과 70년대 초까지는 종래의 정책이 완전히 무의미하고 위험한 것으로 이미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데탕트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같은 종래의 정책들은 완전히 뿌리뽑힌 것이 아니라 곧 다시 소생하여 긴장완화에 제동을 걸고 얼마간 냉전 부활에의 경향을 강화시키고, 무기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협상을 좌절시켰다.
- 미국의 권력 엘리트가 지난 수년 동안의 긴장완화에 실망해서 냉 전으로 되돌아갈 것을 결정했다는 말인가?
답: 그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킨 견해라고 하겠다. 처음부터 미국 의 권력 엘리트가 긴장완화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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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 우리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군축이나 무력사용 포기는 말할 것도 없이, 소련과의 관계개선이나 협력증진을 의미하는 긴장완화는 미국의 권력 엘리트의 정책 내지는 정치적 견해로서 전형적 인 것도 아니며, 습성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엘리트의 내부에도 구분은 있다는 것, 즉 문제에 따라 다른 견해를 가진 상이한 집단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도 알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사 태의 추이, 즉 객관적인 현실에 의해서 때로는 확고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조차도 변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변화가 쉽게
일어난다든가, 또 일단 일어난 변화가 역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지배계급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오랜 습성적인 사고방식은 말하자면 제 2 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 아주 작은 계기로도 다시 종전의 나쁜 상태로 되들 아가기 쉽다는 것이다.
매우 보수적이고, 군사 최우선의 무책임한 정책을 추진하는 가장 유력한 그룹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긴장완화가 실현되기 이전부터 긴장완화로 나아가는 것을 반대했다. 긴장완화가 이루어진 이후에 그들 은 사태를 역전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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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환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 적응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는데 미국에 있어서 적응이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나?
답: 미국이 적응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군 사적 우위가 상실되고 양국간에 힘의 대등성이 확립되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군사력을 쓸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 것, 즉 미국과 같은 군사대국조차 가령 상대가 이란이나 니카라과와 같은 약소국의 경우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동맹국이 독자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그밖에 미국 경제가 요즘에는 다른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 이 점이 명백해지니까 ‘상호의존’ 이 장래이익을 가져온다고 하는 논의는 그것이 견디기 어려운 ‘약점’ 이라고 하는 부르짖음에 의해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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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적응에 따르는 고통에 대해 말한다면, 새로운 냉전을 향해 사태를 진 전시키는 데 일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환상, 즉 미국은 지난날 세계를 장 악했던 특수한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하는 환상을 지적할 수 있다.
- 취임 직후부터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인은 ‘과감하게 큰 꿈을 굴’ 권리가 있다고 국민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답: 그 주장은 과연 그럴지도 모르지만 소련이 자체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 때문에 크게 약화하고, 그 결과 미국이 소련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꿈에 포함시킬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사 언급하겠지 만 지금은 그러한 예측이 과거 60년 동만 반복되어 왔는데, 그것은 빗 나갔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고 싶다.
나는, 또 미국의 정책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중요한 미국 내의 요인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싶다.
- 선거운동 말인가?
답: 1980년의 대통령선거전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으나, 내가 생각 하고 있는 요인이라는 것은 훨씬 장기적인 성격의 것이다. 즉, 미국의 ‘통치가 마음대로 안된다’ 는 데 대해 기성세대 사이에 높아지고 있는 불만의 목소리다. 가령, 국민 합의의 부재, 정치세력의 분열, 정치에 대 한 ‘과중한’ 사회적 요구, ‘과도한’ 민주주의 등이 이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날 냉전시대의 미국은 훨씬 ‘정연하고’, ‘규율을 갖춘’ 사회였고, 따라서 통치하기가 쉬웠다는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 ‘통치의 어려움’ 에 절망적이 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국제 정세가 지금보다
긴장된다면 미국 국민이 좀더 유순해질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요인이 모여서 미국의 권력 엘리트의 상당 부분 사이에 하나 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즉 국내의 블안정을 경감시킬 뿐 만 아니라 세계에 있어서의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높이는 길은, 더 강 경한 정책으로 전환해서,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마음대로 그 힘을 사용할 준비를 갖추어놓아야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 경제의 힘을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더 과감하게 발휘해서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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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도 하고 때로는 협박도 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상황을 대강 훑어본 것뿐으로 실상은 더 복잡한 것이다.
- 그 말투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답: 나로서는 너무 사태를 단순화시키고 싶지 않으며, 있지도 않는 질서나 기구가 있는 것 같은 투로 말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두 개의 주요 조건을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의 권력 엘리트간의 합의 도출과 정책결정의 과정에서 대통령이 확고한 합의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게 된 데에 있다. 확고한 조직을 갖추고 자신감에 넘치는 엘리트 집단보다 분산되고 방향감각을 잊어버린 엘리트 집단을 이끄는 쪽이 어떤 점에서는 더 쉬운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의 정치제도의 최상층부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 는 그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외교정책에는 심각한 의문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문시되는 것은 일이 잘 되어나가지 않는 게 아닌가, 그리고 미국 자신에게도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미국의 정치 분위기를 변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답: 긴장완화에 전통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취해온 사람들이 의식적, 계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온 것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미국의 일반 여론은 긴장완화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 10년 동안의 일부 외교정책의 전개에 있어서, 특히 인도차이나에서의 외교정책의 전개에 있어서는 극심한 좌절을 겪었다. 강경파는 ‘소련의 위협’ 이라든가 ‘미국을 휘젓는 것을 이제 용서할 수 없다’ 는 식의 선전을 통 해 그러한 좌절감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데에 비교 적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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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배타주의의 위험성
- 애국주의적 기운이 갑자기 강해진 것은, 어쩌면 이란인질사건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답: 이것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과 미국인 외교관에게 취해진 행 위에 대한 정당화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미국의 반응은 내 가 보기에는 맹목적 애국주의나 호전적 강경론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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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가?
답: 아니다. 러시아인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사랑한다. 우리들은 다른 나라의 애국주의도 존중한다. 나라가 위기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결 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도덕적 힘이라고 우리들은 생 각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애국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나라에 대해 서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이며, 자신의 나라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에는 비관적인 태도를 취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깃은 레닌의 애국에 대한 이해이다. 국가주의적인 열정은 지금까지 빈번히 나라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했지만, 애국은 이것과 구별되지 않으면 안된다. 19세기의
사서편집자 사무엘 존슨 (Samuel Johnson) 이 애국 이란 것을 ‘악당의 최 후의 도피처’ 라고 규정지었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국가주의적 열정이었다.
- 미국의 정책 변경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답: 긴장완화 정책은 미국에서는 한번도 진정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금 워싱턴의 강경파 사이에서는 대외관계에서 미국의 의지나 결단력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데탕트를 비웃는 풍조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의지나 결단력이 실제로 모자라는 분야가 있었다면 그것은 긴장완화나 군축, 그리고 신뢰구축에 대한 워싱턴의 태도였다.
- 그러다가 1980년의 대통령선거가 찾아왔다. 미국 대통령선거의 축제 분위기가 끝날 때까지 전세계가 활동을 중지하고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실로 한탄해마지 않을 일’ 이라고 런던 국제전략 연구소의 부소장 조나단 알포드(Jonathan Alford) 대령과 같은 저명한 분석가도 나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 알포드는 ‘그것은 매우 한심스러울 뿐 아니라, 위험조차 숨어 있다’ 고 덧붙였다.
답: 분명히 미국의 선거 시기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나쁜 시기이고 나쁜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좋은 시기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다.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인가, 엉성한 대통령이 될 것인가는 어찌 되었든, 먼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후 보자는 보통 어떤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 은 거의 매번 후보자가 군비경쟁을 조장하고 반소감정을 부채질하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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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 가담하는 것같이 보이는 점인데 왜일까.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인 제롬 위즈너는, 지난번 대통령선거전이 끝날 무렵『뉴욕타임즈』의 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우리들은 눈앞에 다가온 소련의 전략적 우위를 둘러싼 신경질적이고 무서운 전망과 미국의 핵전력의 대폭 증강을 흐 소하는 것을 듣게 된다’
위즈너는 이 위험한 전통의 역사를 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밝히 고 있다. 그 이후 이제까지 이 점에서 매우 악질이었던 선거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1980년의 선거는 국제적인 대재난이었다. 미국이 직 면하고 있는 진정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논의도 거의 없었다. 국이을 재검토하고, 이것을 촉진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만들어내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 그 대신 온 세계의 귀에 들려온 것은 귀를 찢는 듯한 무력과시였다. 군사지출의 증가를 요구하는 격렬한 경쟁이나, 극히 위험하고 새로운 핵전략독트린의 발표였다.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이 이란에 대한 기습부대의 공격이었다.
미국은 인공적 위기의 와중에 있었다. 사태가 그렇게 된 것은 카터 대통령이 이 위기야말로 선거에서의 패배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국민도 있었다.
- 달리 어떠한 선거전이 있을 수 있었나?
답: 이상적으로는 나 자신 그렇게 잘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선거전은 정치교육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정부의 정책 수정을 주도하는 도구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과정의 메카니즘은 그러한 민주적 목적을 위해 작용하지 않았다. 1980년에는 미국의 정치적 과정이 인질로 잡혀 있었다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의 지적은 올바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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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들은 쇠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 그럼 우리들은 지금 새로운 냉전을 향해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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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문제는 다음 냉전이 전번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하는 점이다. 이 번에 무제한적인 적의와 대결로 되돌아갈 경우 파괴수단의 개발이 새로 운 수준에 와 있기 때문에, 군사충돌의 가능성은 이전보다 더 클 것이며, 그 결과는 더욱 파멸적이 될 것이다. 더우기 80년대에 냉전회오리가 일어날 경우 그것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들을 그 속으로 끌어들 이게 될 것이다. 국제분쟁에 끼어드는 나라가 많으면 많을수록 위험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될 것이다. 특히 국제분쟁에 끼어든 나라들이 세계를 무대로 무모하고 무책임한 게임을 벌일 경우 위험은 더욱 증대하게 된 다. 이밖에도 냉전으로의 복귀는
핵무기 확산을 사실상 불가피하게 만 들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금후의 수십년간은 천연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기아라고 하는 세계적인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하게 될 것이다. 긴장완화, 군축, 국제협력이 실현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냉전상태 하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카터 정권에서 여론조사를 담당하고 있던 패트릭 카델(Patrick Caddell)은 언젠가『플레이보이』와의 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작은 전쟁은 여론조사의 지지율을 높인다. 전쟁이 없는 상태는 정치상 아무런 득점을 얻지 못한다. 어떤 대통령 이라도 과감한 군사행동을 취함으로써 여론을 자신의 지지로 집결시킬 수가 있다. 아이젠하워에게는 한국과 레바논이 있었으며, 케네디에게는 쿠바와 베트남아 있었다. 존 슨, 닉슨, 포드에게는 베트남이 있었다......’
답: 이른바 ‘도덕성 높은’ 대통령의 아주 좋은 예이다. 극히 평범한 워싱턴의 주역 교대를 저지하기 위해서 허용되는 수단으로서의 전쟁이 논의될 정도니까. 카델의 발언은, 전쟁이 정치적 성공을 위해 환영해마 지 않는 공헌수단으로 되어버린다는, 정치제도의 중대한 결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카델은 비꼬아 말을 한 것 같은데, 과거에 그런 실례가 있었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답: 있었다고 생각한다. 곤란한 시기에는 우익으로 중심을 옮기고 강 경한 태도를 취하는 쪽이 유리하며 안전하다고 정치가가 생각하는 것은 미국 정치의 오랜 특징이다. 어떤 연유인지 그러한 자세를 취하는 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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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적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핵시대에 있어서는 이러한 자세야 말로 국가에 가장 큰 곤경을 가져오는 것이다. 또 어떻게 된 셈인지 이러한 자세가 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무기경쟁과 무력행사를 통해서 안전보장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 최악의 환상 인데도 말이다. 옆구리에 찬 권총을 쏘는 카우보이가 미국에서는 아직 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상징임에는 틀림없으나 여기에는 더욱 중요한 심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사고의 타성일 것이다. 즉, 냉전시대부터 이어받아온 오래된 사고방식의 껍질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단순함이 있기 때문에 끈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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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 수준의 단순성
- 단순함이란 어떤 의미인가?
답: 냉전상황 하에서는, 사물은 모두 싸구려 서부극의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구체적인 적이 있어서 이것이 모든 악의 원천이 된다. 목 표는 확실하다. 즉 이 적을 쓰러뜨린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가하는 타 격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자신은 유리해진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것을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실험했다. 호전적 강경론, 시의심 (淸疑心),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에 대한 적의 등 원시적인 감정 에 호소해서, 자기민족의 우월함을 열망할 수도 있다. 사람은 흑(黑) 과 백(白)만의 2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텔레비전의 골든 타임에서 일분 만에
설명해 낼 수 있다는 것은 더구나 중요한 사실이다.
긴장완화의 철학은 더욱더 복잡해서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 리들은 마음을 넓게 가지고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서, 사희조직, 정치제도, 가치관, 그리고 동정, 반감 등에서 크게 다른 국가들간의 공존협력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이해해야 한다. 국가간의 관계는 한편이 이익을 보는 만큼 다른 한쪽은 그만큼 손해를 본다고 하는 ‘제로섬 (zero-sum)’ 의 게임이 아니라, 상위점과 어려운 점이 있어도 서로 이익을 얻는 것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층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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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고, 종종은 자신들 편에서의 잘못이나 부주의, 심지어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힘이나 사태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제와중용, 그리고타 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와 같은 자질은, 비록 그것이 더 많은 지혜 뿐만 아니라 보다 큰 정치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독선과 오만 혹은 강경한 반응을 보이는 경 향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상대편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은 당신 들의 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 당신은 실망하고 있는 것인가? 긴장완화는 너무 복잡해서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인가?
답: 알다시피 긴장완화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50년대에는 복잡한 국제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60년대에 들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70년 대에는, 현대세계에 대한 어떤 진실이 몇백만 명의 사람들 마음을 휘어 잡았다. 나는 지금도 긴장완화라고 하는 사상이 80년대에 승리할 것이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의 최근의 사태발전이 그러 한 희망을 갖게 해준다.
- 그것은 1981년에 시작된 반핵운동을 가리키는 것인가?
답: 그렇다.
- 긴장은 저절로 높아지는데, 긴장완화를 유지하는 데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신은 말했다. 그 이유가, 냉전의 공식이 위험할 정 도로 단순한 것인데 비해 긴장완화는 지적, 심리적으로 복잡하다고 하는 데에 있다는 말인가?
답: 그렇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타성의 함도 중요하다. 긴장완화는 시작해서 겨우 몇 년밖에 안되었지만 그것에 앞선 냉전은 몇십 년 이나 계속되었다. 이 몇십 년이란 세월은, 여러가지의 선입관이나 편견 만이 아니고, 일정한 메카니즘을 남겨 놓았디. 결국에는 무기경쟁이나 현존의 군사 ㆍ 정치동맹의 메카니즘, 냉전에 봉사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또다른 거대한 하부구조, 가령 심리전쟁이나 비밀작전, 그외의 유사한 활동을 위한 관료기구나 조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각각 모두가 확실하게 살아 남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러 한 메카니즘이
국제긴장을 만들어내고, 군사적 경쟁관계에 박차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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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외부의 적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확산시켜야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이 미국에서 한층 강화되었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경제체제의 중요 부분이나 영향력이 극히 큰 커다란 권익집단과 연결시키는 일종의 ‘연락지대 (transmission belts)’ 가 있기 때문이다.
- 안정된 데탕트가 도대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답: 데탕트에 유리한 소재는 많이 있다. 그것은 커다란 활력을 가지 고 있다. 인류가 파멸을 피하려고 한다면 데탕트 이외에는 받아들일 대 안이 없다는 것이 데탕트를 뒷받침해주는 논지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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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완화란 무엇인가
- 소련이 말하는 긴장완화란 엄밀하게 말하면 어떤 것인가?
답: 가장 권위있는 정의를 인용한다면, 브레즈네프의 다음과 같은 언 급이 있다.
‘긴장완화란 주로 냉전을 극복하는 것, 국가간의 관계를 보다 정상적 인 것, 원활한 것으로 이행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긴장완화라 차이점이 나 대립을 힘이나 협박, 위협 같은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수단으로 교섭에 의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의사를 의미한다. 긴장완화는 어느 정도의 신뢰와 상호이익을 존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우 리들은 긴장완화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의 브루노 크라이스키 (Bruno Kreisky) 수상은 1955년 오스트리아평화조약에 조인한 일이 유럽의 긴장완화정책의 시작이었다 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답: 오스트리아평화조약의 조인은, 참으로 그 성격에 있어서나 그것 이 가져온 결과에서 보더라도, 긴장완화를 목표로 한 행동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치적 과정의 출발점으로서, 그것만을 들 수 있는 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 국제정치는 점점 복잡하게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ㆍ 소 관계는 변함없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세계의 모든 관계의 기축이 되고 있다.
답: 확실히 그렇다. 모든 세계의 움직임을 미 ㆍ 소관계의 프리즘을 통 해서 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겠으나, 양국 관계가 인류에 대해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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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중요성은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의 관계개선이 꼭 모든 문제에 대 한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양국간의 적대관계의 고삐가 풀린다면 우리 문명은 멸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스키너 (B.F. Skinner) 에게 현재 가장 중 요한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들었더니, 즉석에서 ‘살아 남는 것이다’ 라고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답: 그만큼 단순한 것이다. 소련과 미국 상호간에 있어서 최대의 공통이익은 참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나라 사이의 평화공존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 된다. 그것을 좋아하든 그렇지않든 간에 우리들은 서로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쪽도 지구를 떠날 수는 없다. 소련 사람도 미국 사람도 지구상에 있다. 우리들은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쌍방에 있어서 나아가 세계 전체에 있어서 이익이 되는 관계를 확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미 ㆍ 소 두 나라 국민과 세계의 인류가 금후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는 주로 미 ㆍ 소 두 나라가 평화를 위해서 이제까지보다도 더 큰 노력을 하느냐 아니면 무기경쟁을 위해서 자원의 낭비를 계속하느냐에 달려있다. 경제 적, 과학기술적으로 세계 최대의 능력을 지닌 양대국이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전인류에 미치는 이익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제는 늘어나가만 하고 있지만, 결국 이러한 문제는 평화적 분위기 아래에서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억제할 수 없는 적대관계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들은 기껏해야 기분 나쁘고, 음울한 활동이 계속되고, 최악의 경우 지구상의 생명이 모두 핵의 불로 타버릴지도 모르는 장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세계 최강인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일은, 양국이 몇십 년 동안이 나 으르렁대 왔기 때문에, 난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핵시대의 현실은 지금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 관계개선에의 기대는 끊임없이 좌절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실망과 냉소가 생겨나고 있다.
답: 애석하게도 그것은 사실이다. 애석하다고 하는 것은, 긴장을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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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할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명백하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가 지속되면 적의와 무제한의 무기경쟁, 정치적 인,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적인 대결 이외에는 바랄 것이 없다는 견해를 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한 절망적인 기분 속에서 횡행하는 예언은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 지난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본다면 그러한 느낌을 갖는다고 해서 너무 책망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답: 그러나 그것은 잘뭇 생각한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을 보더라 도 대결을 피할 수 없다든가, 냉전의 재개가 부득이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들이 눈으로 본 것은, 양국간의 관계 개선과 국제 긴장의 완화를 위한 노력의 과정이 중단될 수 있으며, 사태는 쉽게 악화 될 수도 있다는 것, 또 쌍방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과거 10년 동 안 조심스럽게 쌓아을려온 것의 대부분이 아주 간단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한다면, 보다 나은 관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이것을 지켜나가는 것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소련측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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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사고방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 미국과 소련 간의 경쟁관계가 지금 상당히 화제가 되어 있다. 미 국의 고위 관리들은 이 경쟁관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견해에 따르면 이 경쟁관계는 제한적인 협력관계와 연결될 수 있을지 는 모르지만, 경쟁관계는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답: 과연 그것이 미국측의 공식 입장이다. 과거2~3년에 걸쳐 그 입 장은 ‘경쟁 플러스 협력’ 에서 ‘일반적 경쟁’으로 바뀌었다. 양국의 관계 에는 확실히 이 두 개의 요인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에 있어서의 두 개의 요인(경쟁과 협력) 각각의 상대적 비중이나 중요성은 정 치 상황이 바뀌면 크게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클라우제비츠의 잘 알려진 진술을 빌어 다시 말한다면, 긴장완화는, 보 다 조심스럽고 안전한 다른 수단으로, 냉전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다. 긴장완화는 그 성격과 목적으로 볼 때 냉전과는 상반되는 정책이다. 그 목 표는 분쟁에 있어서 핵전쟁을 제외한 다른 수단으로 승리를 얻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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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분쟁을 해결하고 방지하는 것이며, 군사적 대결의 가능성을 낮 추고 국제협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 미국의 전 모스크바 주재 대사 말콤 툰(Malcolm Toon)은 언젠가 ‘소련의 사물을 보는 견해,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한’ 미 ㆍ 소간의 우호와 상호신뢰의 이상향이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에는 이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소련 연구가인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는 레 이건 정권의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참모였던 시절,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련이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 동 ㆍ 서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답: 가까운 장래에 세계 어딘가에 우호와 상호신뢰의 이상향이 찾아 온다고는, 여간 낙관적인 기분이 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그러한 이상향을 만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당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좀더 초보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소련의 사물에 대한 견해, 사고방식 이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미 ㆍ 소관계는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은 긴장을 높이는 데에는 더없이 확실한 처방전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반세기 이상에 걸쳐서 미국이 되풀이해온 입버릇이다. 그 결 과 미 소 양국은 관계정상화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양국 모두 그러한 관계에서는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했다. 평화공존의 요점은 함께 살아 가는 것, 정상적인, 가능하면 좋은 관계를 갖는 것, 그러면서 서로 다른 점은 다른 대로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자신과 같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 그러나 사물에 대한 견해 차이는 역시 양국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답: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차이점들이 필연적으로 국제분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된다.
지금 가정해서 소련 대신 다른 초강대국, 미국과 아주 비숫하고, 미 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초대국이 미국을 상대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 초대국은, 미국과 같은 견해, 사고방식을 갖고 경제 ㆍ 정치체제도 같고, 선거와 관련된 관행을 포함한 정치적 관습도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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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또 함부로 강경발언을 토하고 싶어하는 의원이 많은 의희도 그대 로고, 국방성이나 군산복합체, 그리고 매스컴도 같다고 하자. 이 초대국은 에너지 낭비형의 생활양식도 미국과 같고 따라서 페르시아만이나, 석 유둥의 세계 각지의 광물자원에도 미국과 유사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제 2 의 미국이 제 1 의 미국처럼 자기중섬적 ㆍ 독선적이고, 구세 주와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전세계를 자신의 마음대로 개조하고 ‘미국 지배하의 평화’ 를 쌓아을리고 싶어서 서성대고 있다고 해보자. 그 세계 는 미국과 소련이 크게 나뉘어진 채로의 현재의 세계보다 과연 살기 좋고 안전한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 잠깐만, 미국과 소련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실제로는 평화를 위한 것이 되었다는 말인가?
답: 그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그러한 차이가 있다고 해 서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소련의 정책이 평화를 위해서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 그럼 만약 제 1 의 소련과 제 2 의 소련이 있을 경우에는 어떤가?
답: 그대로 닮은 두 개의 소련이라면 평화를 찾아내기는 좀더 쉬울 것으로 생각한다.
제 1 차세계대전은 수많은 소규모의 전쟁처럼, 실제로는 똑같은 견해 나 사회경제체제, 비슷한 목적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끼리의 충돌 이었다. 제 2 차대전에서도 자본주의 국가끼리 싸웠으나, 몇몇 국가들은 소련의 동맹국으로 싸웠다. 소련과 미국의 경쟁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반드시 평화가 위협받을 만한 상황이 그 경쟁 속에서 생긴다고는 할 수 없다. 군사적 경쟁을 억제하고 불필요한 충돌이나 인위적인 분쟁을 피 하고 협력을 필요로 하는 공통 이해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면, 자연스런 경쟁에서 그칠 수가 있다.
- 양 초대국 사이의 ‘자연스런 경쟁’ 이 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답: 초대국간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이질적인 사회체제간의 경쟁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사회체제간의 자연스런 경쟁 이란 각각의 체제가, 자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대해서도, 경제 ㆍ 사회 개발이나 생활의 질 ㆍ 문화 ㆍ 사상 등의 분야에서 어느 만큼의 성취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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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해낼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한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국가간의 정치적 ㆍ 군사적 분쟁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나 의도적인 곡해는 경쟁에 대한 개념의 차이로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다. 소련과 미국 간의 경쟁은,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선 과 악의 투쟁이라는 형태로 그려지는데, 물론 미국이 선이 된다. 객관적 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두 개의 제국간의 경쟁이라는 관점에 서 파악한다. 결국 이 경쟁에서는 양쪽 모두 될 수 있는 대로 큰 쪽의 케이크를 차지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 미국은 1945년에는 확실히 세계의 운명을 그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운명은 미국의 손에서 이미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는데.
답: 우리들 생각으로는 제 2 차대전 후 미국정부는 강력한 제국주의 적, 패권주의적 야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강력했으며 핵 독점에 바탕을 둔, 거대한 전략적 우위조차도 자랑하고 있었다. 미국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세계를 어떻게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 미국도 그 당시의 위치에서 지금은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답: 그렇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날 손아귀에 쥐고 있었던 것을 선의로 내놓은 것은 아니다. 요컨대 세제가 많이 변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지금 이 지구상에서 점하고 있는 지위는, 매우 두드러진 것이기 는 하지만, 이전보다는 겸손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옛 환상이나 잘못된 생 각, 근거없는 주장을 버리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이러한 옛 주장이 또다시 워싱턴의 외교정책의 지침이 되기 시작 하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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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제패의 의도가 있는가
- 소련이 미국 대신에 최고의 지위에 앉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답: 그러한 발상은 우리들의 견해, 사고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소련 경제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해외진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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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을 모두 무시한다고 해도, 소련이 이 점에서 미국을 모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매우 확고한 실 제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제국을 유지하는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이익은 감소할 뿐이 다. 미국이 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는 덕택에 과거 15년에 걸쳐 겪어오 고 있는 곤란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현재의 제국주의적인 충동도 미 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한층 악화시킬 뿐이다. 오늘의 세계에서는 제국주의는 승산이 없는 주장이며, 그것은 이미 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 현 시점에서의 미 ㆍ 소관계를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답: 미국을 연구하면 할수록, 미국에 대한 나의 평가도 조심스러워진 다. 가끔 미 ㆍ 소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부인은 어떠시냐’ 고 물 어서 ‘무엇과 비교해서냐’ 고 대답한 현명한 남자를 떠을린다. 관계를 상대적인 시각에서 검토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비 관적이고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본인은 미 ㆍ 소관계는 지금보다 나쁜 시 기도 있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시기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미국측에서 최근 양국관계를 악화시키는 것 같은 일 이 수없이 일어난 결과, 두 나라의 관계는 아마 근래 10년 간 최악의 상 태가 되어 있다.
- 그것은 상당히 비관적인 평가다.
답: 나도 다른 평가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터 대통 령의 임기의 마지막 1년과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1년 동안에 일 어난 일을 보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크나큰 고통과 노력을 기을 여 이룩해 놓은 것의 상당 부분이 무참히 파괴되었다. 마치 어떤 사람들 이 가까스로 자제를 하면서 이 런 파괴의 대잔치를 오랫동안 꿈꾸어 온 것 같았다. 군비관리교섭은 탈선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큰 타격을 받았다. 경제관계는 거의 완전히 단절되었다. 영사 (領事) 관계는 축소되었 다. 직통항공편에 대한 협정은 파기되고 과학분야의 협력활동도 중단된 것이 많았다. 소련을
증오하는 집단에 의해서 범죄행위조차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처구니 없지만 파괴란 건설보다 훨씬 쉬 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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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건씨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일련의 심한 말로 소련 지도자들을 공격했다. 그것은 별로미 ㆍ 소관계에 좋은 일은 아니었다.
답: 그렇다. 레이건 정권의 출범 초부터 정권의 유력한 대변자들은 기 회가 있을 때마다 소련을 비난했다. 가령 소련이 국제테러리즘을 지지 하고 있다든가, 화학병기, 생 물병기를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한 골목대장 특유의 억지춘향격 수사는 이것에 알맞는 정책, 결국 주로 군 확경쟁에 박차를 가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발언이나 정책의 중요한 동기는 소련을 도발하고 그 정책을 변경시켜서 냉전에의 복귀를 정당화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제26차 소련 공산당대희는 그같은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나타냈다. 대희에서는 미 ㆍ 소관계를 포함한 주요한 국제문제에 대한 건설 적인 제안이 있 었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대회의 연단에서 소련이 국제관계의 정상화를 계속해서 중시해나갈 것을 되풀이해서 지적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만으로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니다. 인간 관계에서 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싸움은 일방적으로 걸어올 수가 있어도 화해 는 관계자 모두의 합의가 없으면 안된다.
- 하지만 가령 워싱턴 쪽에서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사가 있다 고 해도 역시 장애는 수없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답: 그렇다. 장애는 항상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는 장애물을 제거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한 노력을 하 는 것이 양쪽의 공통 이익에 필요하다는 것을 양자가 이해한다면 말이 다. 양쪽의 이해는 그같은 노력을 계속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 공존의 문제를 화제로 하고 있는 셈인데, 지난날 흐루시초프가 말한 유명한 ‘너희들을 장사지내 주겠다’ 는 진술은, 지금도 소련의 태도를 비교적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답: 그 표현은 약 20년 전 흐루시초프가 입에 담았을 때, 각양각색의 억측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이 표현이 수사상 타당했다고 변호할 생 각은 없다. 그러나 그 의미가 결코 호전적이지도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는 점은 지적해두고 싶다. 이 표현이 겨냥한 것은, 우리들이 믿고 있 는 바로는, 긴 안목으로 볼 때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의 승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역사적인 우월성에의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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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승리라고 하는 것도 자본주 의 국가의 국민이 우리 쪽으로부터의 강제를 받지 않아도, 언젠가는 스스로 사회주의를 선택할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승리인 것이다.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라고 하든 자유기업체제라고 하든, 그밖 의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체제의 이점을 믿고 늦건 빠르건 세제의 모든 나라가 같은 체제를 택할 것이라 고 기대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신념과 기대가 다르다고 해서 공존할 수 없다고
우리들은 생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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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반혁명의 수출에 반대
- 서방측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사회주의혁명을 그저 방관자적 입장 에서 다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신들은 혁명을 지원하는 것을 국 제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점이 결국 문제를 만들고, 평화공존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답: 그같은 추론은 표면상으로만 그럴 듯하게 보인다. 우리들은 다른 나라에서의 사회주의투쟁의 결과에 대해서 무관심하지는 않으며, 동정을 감추지도 않는다. 그러나 외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도와주는 유일한 길은 우리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 즉 우리나라에 보다 나은 사회를 건 설하고, 또한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일이 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사회주의를 강요하는 일, 흔히 말하는 ‘혁명의 수출’ 에는 반대한다.
동시에 어떠한 반혁명의 수출도 반대한다. 그것은 곧, 외부의 간섭에 의해서 혁명 전의 정권을 부활시키는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이야기이다. 역사는 반혁명의 수출이 늘상 있는 관행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적이 무관심한 방관자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다.
- 실례지만 순전한 선전처럼 들리는데.
답: 그렇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대처는 진지하다. 사실, 1917년 혁명 뒤에 당내에서 행해진 최초의 진지한 토의는 이 문제에 대 해서였다. 당내의 일부 사람, 말하자면 극좌분자인 트로츠키파는 혁명 전쟁을 통해서 국경을 넘어, 혁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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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당내의 압도적인 다수는 이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레닌은 외 국을 억지로 혁명에 밀어붙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의 절연’ 을 의미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모스크바와 북경 간에도 똑같은 대립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답: 그대로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걸쳐서 두 나라간 대립의 초기 단계에서의 주요 쟁점의 하나가 바로 그 문제였다. 모택동과 그 일 파는 평화적 공존을 ‘혁명에 대한 배신’ 이라고 공언하면서, ‘권력은 총 구에서’ 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것은 레닌이 반대해서 싸운, 바로 그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어떤가? 소련은 1978년 이래 차츰 간섭을 확대해서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데, 이 것은 작은 이웃나라에 자신의 의사를 밀어붙인 것이 되지 않는가? 무력으로 공산주의를 수출한 고전적인 예로 보이는데.
답: 1978년 4월의 아프가니스탄 혁명은 우리들이 ‘수출’ 한 것이 아니 다. 현지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우리들은 그 혁명의 소식을 서방측 보도기관으로부터 들았다. 사 실상 아프가니스탄에 혁명을 수출할 필요는 없었다. 결국 당시의 정세 는 정치 ㆍ 사회체제를 급격하게 바꾸는 것 외에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심각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남아있지 않다는 정도에까지 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뒤떨어진 나라의 하나라는 점을 잊지말아 주기 바란다. 아프가니스탄은 1천7백만 국민을 위해 경제개발이나 사회적 ㆍ
문화적 진보, 그리고 알맹아 있는 민주주의를 가장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 전에는 조심조심 개혁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이러한 개혁은 이 나라 사희,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근대화의 발전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한편, 개혁을 바라는 압력은 고조되고 있었다.
그런데 1978년 4월의 반란은 구체제측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노동조합, 학생단체, 민족민주당이라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좌익을 배제하고자 한 시도 때문에 야기되었다. 일련의 살인사건과 체포사건이 계속된 데 대 해 민족민주당이 무기를 갖고, 구체제를 전복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아 프가니스탄의 순수한 내정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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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소련은 혁명세력에 강한 공감을 가지고 있었다.
답: 사실이다. 그만큼 혁명의 목적은 매우 숭고한 것으로서,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었다. 경작하는 자에게 땅을 주고, 굶 주림을 없애고, 여성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문맹률 90%에 달하는 국민을 교육시키며, 요컨대 기본적인 인권과 사희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그 목적이었다. 혁명 이래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경제 ㆍ 기술 원조를 대폭 늘렸다.
- 군사원조도 늘어나지 않았는가?
답: 그렇다. 혁명이 자위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혁명에 의해서 권력과 토지와 특권을 잃어버린 구 지배엘리트는 권력을 다시 빼앗기 위 해서 모든 수단 방법을 썼다. 그들은 마국, 중국, 파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등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카불의 새정 부는 강력한 반대세력에 대항해 왔다. 한 가지 마음에 새겨두기 바라는 것은, 유목민족의 출입을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국경은 사실상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의 4 월혁명 초기부터 아프가니스탄은 외부 의 간섭을 받고 있었다. 우리의 군사원조는 우리들의 의사를 아프가니스탄에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외부의 간섭 에 대항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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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련인의 미국관
-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평화적 공존의 문제에서 이야기가 옆으로 나갔다. 평화적 공존의 문제는, 소 련이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또 물론, 역으로 미국이 소련을 어 떻게 보는가에 크게 달려 있다. 모스크바는 미국을 어떻게 보는가?
답: 그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미국은 소련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테마이다. 책이나 기사도 수없이 쓰여지고 있다. 우리들이 미국 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지니고 있는가를 짤막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개략적인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 수 없겠지만, 하여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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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되풀이하지만, 소련 국민은 미국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민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 교육, 직업 등에 관계없이 비교적 넓은 층의 국민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국인의 소련에 대한 관심과 비교하면, 이 점에서 한층 다른 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는 소련은 다른 나라와 비숫비슷하겠지만, 미국쪽 은 미국 이외의 세계에는 전통적으로 극히 제한된 생각 말고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소련은 미국을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매우 강력 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소련 국민쪽에서 본다면, 미국 외교정책 의 특징은 제국주의적인 의도에 있다. 특히
현단계에서는 그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소련 국민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의 미국의 대소 정책은 적대적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다는 것도 덧붙여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밖의 점에서는 미국은 보고 있기에 결코 싫증이 나지 않는 나라이 다. 가끔 화가 나게 하는 일도 있지만, 우리 국민은 미국의 문화나 문 학, 그리고 영화, 음악, 건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분야에 서의 미국의 우수한 작품은 소련에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의 전 문가들은 미국의 과학, 기술, 산업, 의학, 농업 등의 업적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다. 또 대중음악이나 청바지, 츄잉검, 펩시콜라, 그리고 대서부 등 미국적 생활양식의 여러 가지에도 관심은 높고 특히 젊은이 사이에서 때로는 열광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 있다.
동시에 소련의 일반 대중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차츰 심각 해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라고 하는 것은, 먼저 인플레, 실업, 에너지 등의 경제문제이다. 또 흑인, 인디 언, 스페인계 등의 소수민족 상황과 같은 사회문제, 그리고 뉴욕, 클리 블랜드 등의 오래된 대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 대다수의 미국인에게 관 계있는 후생의료문제, 범죄나 마약의 문제 등등도 들 수 있다. 끝으로 미국사회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에 정치적, 정신적인 문제도 있다. 미국 의 궁극적인 권력이나 미국의 국가적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발언권은 기 업엘리트가 쥐고 있다고 우리들은 확신하고
있다. 이 확신은 미국 민 주주의나 미국적 생활양식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를 결정함에 있어서 매 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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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게이트사건은 소련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
답: 지극히 이상한 사건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사건은 미국 인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역시 그랬던 것이 아니었던가. 미국의 역사상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우리들의 연구소에서는 몇 사람의 연구원이 당 시 닉슨 사임에 내기를 걸어서 이겼다. 그러나 내기에 진 사람도 수가 같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선견지명을 너무 내세울 것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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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ㆍ 캐나다 연구소의 역할
- 미국 ㆍ 캐나다 연구소의 일을 조금 들려 주었으면 한다. 크레믈린 에서 1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18세기풍의 우아한 저택을 연구소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신들은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답: 물론 우리들은 언제나 미국의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 내기나 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소는 소련 과학아카데미 가 만든 수많은 연구시설 중의 하나이다.
- 언제 설립되었는가?
답: 1968년이 다.
- 그곳에서 하는 주요 연구분야는 무엇인가?
답: 미국과 캐나다의 경제문제, 내정, 사회문제, 정당, 선거의 동향 등이다. 또 미국의 군사정책연구도 하고 있다. 단지 이것은 미국의 군사기구 그 자체가 대상인 것이 아니고, 군사를 둘러싼 지출과 계획, 군 사상의 이론과 자세가 미 ㆍ 소관계를 포함한 미국의 외교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 등이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또 군비관리의 문제도 연구하고 있다. 유럽, 극동, 중동, 개발도상국 등 각 지역에서 의 미국 외교정책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부분도 있으며, 미국의 여론, 사상동향,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 다수의 연구원이 있는가?
답: 약 350명과 그밖에 대학원생 수준의 학생이 20~30명 있다. 연구 소의 스탭은 이곳에서 훈련을 받은 자가 많다.
- 연구발표는 어떤 곳으로 나가는가?
답: 우라가 만드는 것은 주로 책이다. 최근에 발표한 것 중에는「현 대 미국 외교정책의 개념」, 「미국의 대외경제정책」, 「80년대의 문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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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캐나다」, 「현대 미국정치의식」, 「미국경제 - 그 문제와 모순」, 「미국의회와 외교정책」 등의 학술논문이 있다. 또 월간 출판물도 내고 있다. 연구소의 전문가들은 강의나 신문, 잡지에의 원고집필, 델레비전 출연 등 광범위한 교육활동에도 끌려다니는 상태이다.
- 연구소의 보고서는 정부에도 제출되고 있는가?
답: 만일 그곳에 멋진 견해가 있다면, 그것을 정부에 전하는 것은 조 금도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먼저 이 멋진 견해를 찾아내는 것이 다. 우리들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정부사람들로부터 문의가 있으면 여기서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데, 이 연구소는 외교정책의 일상업무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무성이나 워싱턴에 있는 소련대사관의 일이며 우리들의 임무는 장기적인 문제나 추세를 연구하고, 연구대상국을 보다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기초적인 연구,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 미국측에도 소련을 연구하는 같은 연구소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답: 본 연구소와 똑같은 것에 해당하는 갓은 없다. 그러나 소련 연구를 위한 소규모의 연구소는 대학 외에도, 랜드 코퍼레이션 (Rand Corporation) 이나 국방분석연구소 등 국방총성이 후원하고 있는 시설 등에 수 없이 있다. 또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연구소 부속 조지케난연구소와 같은 기관도 있다.
- 미국인 학자와 정례적인 접촉이 있는가?
답: 그렇다. 여러 대학 외에 외교평의회, 브루킹즈연구소, 스탠포드 조사연구소, 기타 기관들과 여러가지 실무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부의 연구소와는 공동연구를 행하고 있는 일도 있다.
- 학자의 교환도 하고 있는가?
답: 소련 사람들도 미국에 가고 있고, 우리들도 학자나 의원, 실업가 등을 소련에 초청하고 있다. 그밖에 모스크바 방문중에 이곳에 찾아 오 는 미국인들도 많다. 애석하게도 미국 정부가 과거 1~2년 사이에 미 ㆍ 소간의 과학과 그밖의 분야에서의 교환계획을 갑자기 억제시켰기 때문 에 당 연구소의 미국과의 관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 이 연구소를 찾아온 적이 있는 미국인의 이름을 몇 사람 들어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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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좋겠다.
답: 월터 먼데일 (Walter Mondale, 前 부통령) 은 상원의원 당시 이곳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다. 에드먼드 머스키 (Edmund Muskie, 前 민주당상원의 원) 도 온 적이 있으며, 애버렐 해리만 (W. Averell Harriman, 前 주소련대사) 도 두 번 정도 찾아주었다. 거스 흘 (Gus Hall), 현리 원스턴 (Henry Winston), 안젤라 데이비스 (Angela Davis) 등의 미국공산당 지도자들을 맞았을 때도 있었다. 더 이름을 열거한다면 아주 긴 명단이 된다. 상원의원 으로는 케네디 (Kennedy), 베이커 (Baker), 간 (Garn) 의원으로부터 하원의 원으로는 버닉 (Vanik) 의원, 그밖에 사이러스 밴스 (Cyrus Vance, 카터시대 의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르제진스키 (Zbigniew Brzezinski, 카터시대의 보좌 관), 해롤드 브라운 (Harold Brown), 마살 술만 (Marshall Shulman), 마이 클 블루멘탈
(Michael Blumenthal), 아더 번즈 (Arthur Burns), 존 케네스 갈브레이드 (John Kenneth Galbraith), 조지 케난 (George Kennan), 로버트 프랭거 (Robert Pranger), 레슬리 젠브 (Leslie Gelb), 해롤드 애그뉴 (Harold Agnew, 로스 알라모스연구소), 폴 도티 (Paul Doty), 스탠리 호프만 (Stanley Hoffman, 모두 하버드대학), 월리엄 킨트너 (William Kintner), 데이비드 록 펠러 (David Rockefeller), 클라우젠 (A. Clausen, 〈Bank of America〉 총재), 로이 애쉬 (Roy Ash), 텍 스손튼 (Tex Thornton, 린턴잔업), 플 오스틴 (Paul Austin, 코카콜라), 돈 켄달 (Don Kendall, 펩시콜라), 워렌 버거 (Warren Burger, 대법원장), 제임스 개빈 (James Gavin, 퇴역장성), 진 라 로크 (Gene La Rocque, 퇴역 해군제독) 월리엄 버클리 2세 (William F. Buckley, Jr) 와 그 의 동생 제임스 버클리 (James Buckley), 그리고 하원 군사위원회의 거의 전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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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이상한 버릇
- 연구소를 방문한 이러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또 당신 자신이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과장해서 말하는 경 향이 있다는 인상은 받지 않았는가? 미국인에게는 매조키스틱한 데 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는가?
답: 어떤 사회라도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를 판단하 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다. 그 기준은 시대와 더불어 변한다.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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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히 미국인은 보통 자신들이 안고 있는 일부의 문제에 대해서 무척 개 방적인데 그것은 미국인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매조키즘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을 자기비관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덕택에 이 사회는 진보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등시에 미국인의 자기비판은 반드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데가 있다. 여기에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가령 미국인은, 내게 말을 하라고 한다면, 자신들의 문제를 ‘깨끗이 털어버리는’ 특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고 조명하고 그것을 비난한다 - 그런 다음 이 문제를 전부 잊어버리고
다음 문제에 눈을 들린다 -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미국인은 믿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요컨대, 보일러가 증기를 뽑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한 가지 외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자신들 사회의 냄새나는 곳에 ‘뚜껑을 닫고’ 태연하게 지날 수 있는 점이다. 가령 미국인은 그 들 나라의 어떤 도시들의 경찰이 부패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피 아가 카지노를 장악하고 있으며 광고에는 거짓말이 가득하다는 것도, 또 정치가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가끔 블법수단도 가리지 않으며, 일단 당 선이 되고 나면 선거공약은 돌아보지도 않는다는 것 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대중은 이런 것에 거의 분노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뿐 아니 라,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는 오락이나 기분전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이러한 화제의
주인공을 부러워하기조차 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인의 매조키즘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면, 확실히 미국에서 그러한 불평의 소리를 듣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이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최근에는 비판적 태도를 자유스럽게 표현하는 일이 적어지고, 온 나라가 자화자찬하는 경향이 분명하게 높아져서, 문제에 대 해 정면으로 대처하는 의욕이 약해진 것처럼 보인다.
-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어떤 것인가?
답: 지금 미국의 여른을 주도하는 입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미국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든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미 국 국내가 아닌 국외에 있다든가, 자신들이나 미국, 현재의 정부나 그 정책에 신뢰를 회복하기만 하면 문제해결은 훨씬 쉽다고 주장하고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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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류의 책임전가나 지적소심증이 오늘날의 미국에 있어서의 가장 심각한 정신적 ㆍ 정치적 문제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가장 요구되는 바로 그때 에, 그러한 해결제을 모색하는 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문 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증가시키게 된다.
- 미국에서는 자기비판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답: 그렇게는 생각지 않는다. 하나는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의 모색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는 지금, 여러가지 분야를 들러싼 다면적인 위기가 오래 계속되는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와 내 동료들은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 만일 미국 내에서 외교정책을 포함해서 정책 전체를 현실의 변화 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진실되고 합리적인 어떤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점점 심한 충격, 모름지기 미국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강렬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그것이 점점 더 명백 해져 가고 있다.
- 혁명을 말하는 것인가?
답: 그런 염려는 없다. 가까운 장래에 미국의 사회, 정치체제가 붕괴 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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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혁명은 일어나는가
- 1984년까지 공산당이 미국을 장악하는 일은 없을까?
답: 일부 사람들이 예언하는 방향으로 일이 벌어진다면, 오웰이 ‘빅 브 라더 스테이트 (the Big Brother state, 조지 오웰의 소설『1984년』에 둥장하는 독재국가)’ 에 대해서 예견한 것의 몇 개는 1984년까지 실현될지도 모른 다. 그러나 그래도 미국은 어디까지나 반공의 ‘빅 브라더’ 가 될 것이다.
- 미국과 역사적 경쟁관계에 있는 소련으로서는, 미국 문제가 악화 되는 것을 자신들에게 보탬이 된다고 환영하지 않겠는가?
답: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정치관이라든가 이론이 실증된다면 뭔가 지적 만족감을 갖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 점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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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이쪽이 기뻐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도시의 빈곤과 실 업, 가두에서의 범죄 같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은 평균적인 미국인 들이며 월가 (Wall Street) 는 아니라는 것을 소련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보고 어떻게 우리들이 기뻐할 수 있겠는가? 소련 보도매체에 전해지는 서방제국의 사희문제에 대한 기사를 분석해 보면 그러한 문제를 기뻐한다든가, 바라고 있다든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미국의 주유소에 자동차 행렬이 늘어섰다고 해서 건배를 하고, 미국의 도시가 파산할 때마다 당의 집회를 열어서 기세를 올린다든지 하지는 않는다.
보다 단수가 높은 사람들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가 심각화하는 것을 우려하기조차 한다. 그것은 현재의 미국 체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라는 것이, 일반국민이 그 원인이나 해결책을 이해하고 있는 수준보다도, 훨씬 심각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은 현상에 크게 불만스러워 할 수도 있지만, 그 불만의 참 원인에 대해 서 그릇된 판단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은 사람을 혹(惑)하게 하는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거짓 해결책을 지지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1920년대의 이탈리아, 30년대의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쨌건 미국 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정권을 주고,
뉴딜의 개혁을 가져오게 한 대공황이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총통으로 해서 게 2 차대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확실히 우리로서는 자본주의와의 역사적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 그러 나 방사능 파편 위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싶지는 않다.
- 미국측의 어떤 통계 숫자에 의하면 사회주의정부가 지배하는 영 역은 세계의 39%에 이르고 전 인구의 42%가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신봉하고 있다고 한다.
답: 그같은 숫자에는 약간의 수정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회 주의와 공산주의가 지금은 지구상의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생활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카터 전 대통령은 애나폴리스에서의 연설에서 공산주의가 ‘다른 나라들에 있어서, 마르크스 ㆍ 레닌주의의 빛깔을 띤 나라에서조차 점점 매력을 잃고 있다’ 고 지적했고, 레이건 대통령도 공산주의의 종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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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러한 발언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답: 우리들 해석으로는 그러한 발언은 백악관의 희망적 관측에 지나 지 않는다. 당신이 방금 인용한 숫자도 그같은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가 되며 세계의 발전의 원동력이 자본주의의 손에서 떠나고 있다는 것을 명 백하게 나타내고 있다.
- 폴란드 사태가 사회주의의 그같은 견해를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 하는가?
답: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체제라도 잘못을 범하지 않고 곤란에도 직면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자본주의도 물론 그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더욱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임무를 다루는 사희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일이지만 역사적 과정도 혁명도 순조롭게 발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실패는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일어 나는 사건들을 전체적으로 보고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면 알 수 있는 것 이지만 미국의 대통령은 사태의 전망에 있어서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소련을 포함해서 경제상황이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사회주의 국가가 많지 않은가?
답: 우리들은 다소의 경제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누구한테도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토의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 국가가 있다면 이름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여서 우리나 라가 꾸준한 속도로 발전하고 았다는 것을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다. 우리 나라의 성장률은, 서방측 기준에 비추어 말하면, 적어도 정상이라 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소련 역사에서는 지난날 한 번도 경기후퇴를 한 적이 없다. 1970년대에 소련의 일인당 실질소득은 약 50% 늘어났다 그리고 인구의 40%는 새로운 고급아파트에 옮겨 살고 있다.
- 그것은 너무 낙관적으로 들린다. 70년대에는 소련의 GNP 도 공업생산도 성장률에 있어서 급락하고 있지 않은가?
답: 성장률은 얼마간 떨어졌다. 그래도 미국과 비교하면 약 2배 높은 수준이었다.
- 농업은 어떠한가? 서방측에서는 소련의 농업이 완전실패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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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답: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우리 나라의 농업에 아직까지도 중 대한 어려움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어느 정도 서방측보다 좋지 못한 기상조건이 원인이다. 그러나 농업은 현재 기초적인 발전과정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경제부문의 하나이다. 과거 5년 동안에 소련은 전체 예산의 약 25%에 해당하는 1천7백 20억 루불을 농업에 투자했다. 주요 농산물의 생산은 우리들의 기대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착실하게 증 가해 왔다.
- 당신은 가까운 장래에 미국에서 혁명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미국에 언젠가는 급격한 변화 가 올 것으로 보는가?
답: 물론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점에서 미국만을 예의로 취급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가까운 장래에는 없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 사회도 사회주의에로의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에 가장 적합한 체제를 결정하는 것은 미국인 자신들이 다. 미국이 사회주의화하는 때가 되어도 그것은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와 는 전혀 다른 사회 주의가 될런지도 모른다. 미국 사회주의는, ‘메이드 인 유에스 에이 (Made in USA)’ 라는 라별을 붙인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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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우직
- 1933년에 미국인들은 과감한 해결방법을 찾아 내었는데, 독일인 들은 파멸로의 길을 밟게 되었다. 미국도 장래대처를 잘못해서 같은 위기에 빠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 이유가 몇 개 있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미국인도 과거 수십 년 동안에 매우 현명해졌다. 무사평온의 시대보다도 태풍의 시대가 보통 은 여러 가지 배우는 것이 많은 법이다. 역사적인 경험이 풍부해졌다는 것을 빼놓고도 대중교육이 눈에 보이게 진보했다. 미국인들은 지금 전 보다 더 많은 독서를 하고 있다. 미국은 본격적인 독서붐을 맞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정부의 선전에 현흑되는 일이 적어졌으며 스스로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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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세계를 더 현실적으로 보는 방향으로의 전진은 애석하게도 늦어지고 있다. 그 나라에는 아직까지도 무지와 우직이 광범위하게 존 재하고 있다. 미국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상황은 1933년보다 훨씬 복잡해졌으며, 대중조작의 기술 또한 장족의 진보를 보이고 있다. 나라를 그릇된 방향으로 끌고가려는 무리 들도 보다 정교한 기술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평균적인 미국인의 계발 정도가 높아졌다고는 해도, 결정적인 순 간에 그릇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 확실히 유럽에서 보고 있으면 지금도 미국인은, 유럽 사람들과는 달리, 제국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답: 동감이다. 배우지 않으면 안될 교훈은 많으며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새로운 현실도 많다. 가령 미국인은 절대로 안전하다는 감각에. 익숙해 왔었다. 이 감각은 넘기 어려운 장애라고 할 수 있는 두 대양에 둘러싸여서 과거 2세기 이상에 걸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제 2 차 대전 후의 처음 몇 년 동안 미국이 가지고 있던 전략적 우위 덕택에 이 절대로 안전하다고 하는 감각은 한층 강해진 것이 틀림이 없다. 지금은 그 상황이 돌변했다. 단순하게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과 거의 동등해졌다 는 것만이 아니다.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소련을 위시한 다른 모 든 국가들처럼 대파멸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렇다. 이것은 미국인들에 있어서 새로운 심리적 경험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또 이 것에 익숙해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소련의 위협’ 에 대해서 전보다 더 두려움에 빠지기 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 충분한 돈의 할당을 받아서 적당한 양의 병기를 생산할 수만 있다면, 지난날의 무적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식의 마법을 약속하는 사람들 에 따르려고 하는 끊임없는 유혹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 다음, 미국이 멀리 떨어진 땅에 있으면서 자급자족하고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부세계에 관심을 쏟을 일이 없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인들이 복잡한 국제문제를 탐색하는 것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교정책을 가끔 국내 정치의 희생으로 삼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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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왜 소련관이 비뜰어지는가
- 평균적 미국 시민들의 소련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당신은 어떠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가?
답: 지금까지 내가 우연히 받은 인상 중에는 무지나 부정확한 인식, 오해나 불신 같은 것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나 러시아인에 대한 증오의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만난 사람들로부터 얻은 인상인데, 적어도 평균적 미국인에게는 자진해서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려고 하는 데가 있다. 또 대부분의 미국인 특유의 우정이라든가 솔직성은 이 점에서 유익하다고 본다.
- 미국 상원외교위원회는 1979년에 미 ㆍ 소관계에 대한 책을 낸 바 있다. 당신은 이 책에 기고한 바 있는데, 당신이 거기서 거론한 문제 의 몇 개를 들어보고 싶다. 하나는, 미국의 일반 국민이 소련이나 소련 국민, 지도자 둥에 대해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한 점이다.
답: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국 자신에 있어서 중요성이 높은 문제에 대해서조차도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국인이 지닌 인식이 이처럼 오랫동안 일방적이고 비뜰어진 정보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어 온 나라는 소련을 제외하고는 달리 없을 지도 모르겠으나, 이 점을 생각한다면 미국인의 소련에 대한 견해가 부 정확한 일이 많은 것은 별로 놀랄 것도 없다. 그들의 견해가 그처럼 강 한 편견이나 곡해에 물들여진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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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보의 매개자
- 지금 이야기한 책에서 당신은 다시 다음과 같은 문제에도 언급했 다. 결국 소련에 대한 미국의 여론은 어떠한 정보에 바탕을 두고, 어 떠한 심리적 ㆍ 사회적 ㆍ 정치적 세력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인가 하는 문 제이다.
답: 나의 답은 이러했다. 결국 미국인들이 소련에 대해서 얻는 정보 의 대부분은 미국의 매체 (신문기자, 전문가, 정치가, 그리고 미국 중앙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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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CIA) 과 기타 정부, 민간기관의 보고) 를 통해서 대중의 손에 들어가게 되 는 간접정보라는 것이었다. 이 점은 어느 정도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마 찬가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미국측의 매개자는 소련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함에 있어서, 매우 자주 특이한 편향을 보인다. 이것 은 첫째, 많은 매개자가 지닌 개인적인 사상상의 편견의 결과이다. 또 한 가지는, 비뚤어진 소련을 만들어내는 것에 이익을 갖게 되는 자들로부터의 직접, 간접의 압력을 받는 결과이기도 하다. 특수이해집단이 국 가의 정책이나 그 배경이 되는 기본적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 친다는 점에서 미국은 세계의 다른
국가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이다. 미국인의 소련관을 왜곡시키는 데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에는 군산복합체나 초보수파분자, 냉전에서 이득을 보 는 집단, 동유럽에서의 반공이민을 대표하는 조직, 이스라엘 로비 등이 있다.
- 당신의 생각으로 미국인의 여론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진정으로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가?
답: 미국의 여론이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이 영향력은 때와 경우에 따라서는 가령 선거 전(前) 같은 때에는 무척 커진 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보통 행정부나 의회는 여론보다는 조직력이 있는 압력단체의 기분에 더욱 반응하기 쉽다. 그리고 물론 대부분의 경우 미국 정부나 정책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단체는 여론에 호응하는 대신에 대중의 무드를 자신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려고 할지도 모른다.
- 소련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미국의 여른은 전문가들의 그것과 많 이 차이가 나는가?
답: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상 이점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랜 동안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소련에 극도로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모름지기 소련 연구가 냉전시대에 꽃피었기 때문이겠으며, 이러한 전문가의 대다스가 냉전을 위하여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미국의 소련연구전무가들 중에 동구로부터의 이주자가 이상하게 높은 비율을 점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소련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는, 제 2 차대전 후 자신 들의 국가에서 일어난 변화와 결부된, 지극히 부정적인 개인적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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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수년 동안 이러한 사정은 어 느정도 바뀌었다. 미국은 미국 태생의 정통적인 소련문제전문가를 양성 했다. 그들은 개인적인 견해는 서로 크게 다르겠지만, 광범위한 미국의 정치적 이해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소련 연구의 새 얼굴들은, 그 견 해가 어떠하든, 냉전의 전사들로 키워진 사람들은 아니다. 물론 보다 나이가 든 세대 중에도 눈에 뜨이는 예외는 있어서 탁월한 지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매우 성실하고 소련과의 정상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명 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신 ㆍ 구 어느 타입의
전문가들로부터도, 자신이 바라는 어떠한 관점에 대 해서도 입증을 받을 수가 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전문가를 믿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내 생각 은 첫째로,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는 있어도 정치 지도자의 개인적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 자신이 전문가가 되어 어느 전문가가 객관적이 고 올바른 분석을 제시해 주는가를 정확히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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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엘리트의 오산
- 정치 엘리트에 대해서는 어떤가? 그들은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답: 여기에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매우 규모가 큰 두뇌집단, 모름지기 세계 최대의 두뇌집단이 외교정책에 봉사 해 왔다. 역대정부는 항상 최고, 최상의 영재들을 정부에 불러들여 봉사시키려고 해왔다. 대학 내외에 설치된 수많은 연구센터에서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주목할 가치가 전혀 없는 문제들 에 대해서도 매일매일 세세한 검토를 하고 있다.
국방성, CIA, 국무성 등의 관청에서는 정책결정을 돕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써서 분석 ㆍ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엘리트 집단은 세게 정치의 복잡함이나 군사, 경제, 정치상의 문제해결의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계발과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대대적인 활동의 실제적인 결과를 보면 비용에 걸맞는 효과가 나오는지 어떤지에 대해 의심치 않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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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미국의 정책결정에 관한 이같은 모든 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일련 의 중대한 오산이나 잘뭇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오산이나 잘못은 다른 어느 국가의 경우보다도 훨씬 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어떻게 해서 이러한 역설을 낳는 결과가 되었는가?
답: 정책결정자들아 조사, 분석을 맡았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고, 또 전문가쪽의 분석이 별로 좋지 않은 경 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더 뿌리가 깊다 고 생각한다. 정책결정자들에게 잘못되거나 심지어 불합리한 결정을 하도록 하는 국내정치적 구조가 있다는 것을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의 지도자의 선출 과정에는, 때로는 그 임무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자질의 사람이 뽑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 는 논리와 이성이 요구하는 바를
부정하는 것 같은 어떤 류의 강력한 이해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두뇌의 문제 라고 스탠리 호프만이 언젠가 지적한 일이 있다. 이것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들이 목격하고 있는 것이 정치적인 보디 빌딩의 새로 운 물결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일부 인간들이 어리석어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탓만은 아니다. 정치체제 그 자체가 매우 답답한 틀 속에서 합리 성을 구속하며 제한하고 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 미국의 외교정책 중에서 소련에게 가장 골치아픈 것은 어떤 점인 가?
답: 몇 가지 점은 이미 언급했다. 가령 군사지출을 확대하고, 병기를 산처럼 쌓아올림으로써 핵시대의 매우 복잡다기한 안전보장문제를 피 해 나가려고 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또 한 가지는 정치지도자들이 안정된 외교노선을 유지하는 것보다, 국내정치에의 배려를 우선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의 중동정책을 보면 그러한 점을 잘 알 수 있다.
또 계속성이 모자란다는 점도 있다. 그 때문에 군비관리협정과 같은 가장 중요한 문제에도 교섭 상대로서 미국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2단 계 전략무기 제한협정 (SALT II) 의 불행한 결과를 예로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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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처음 닉슨 대통령과 교섭을 개시했는데 포드 대통령 때에 와 서는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뒤 카터와도 또 그랬고 그리고 지금 또 레이건 대통령은 모든 것을 변경시키든지, 파기 하고 싶어한다. 또 미국에 구세주적 발상이 아직도 엄연히 남아 있다는 것도 지적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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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의 구세주적 발상
-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답: 일 예를 들겠다. ‘이 나라가 양 대양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신의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믿어 왔다. 특별한 종류의 사람들이 이 나라를 이곳에 만든 것이다...... 우리들은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로널드 레이건의 1980년의 발언이다. 마치 이것은 과거의 캘빈주의 시대의 유산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당시 청교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도, 구세계의 죄악에서 해방된, 새롭고 선택된 국가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같은 방 어적 감정은 그후 ‘명백한 운명 (Manifest Destiny)’ 이라고 하는 형태의 공격적인 감정으로 발전해서, 다시 ‘미국의
세기 (American Century)’ 둥으로 진보해 갔다.
지금에 이르러서 이같은 구세주적 발상이 옛날의 신통력을 거의 잃어 버리고는 있으나, 다른 사람들을 가능하면 설교로, 필요하면 힘으로 교 화해 버리려고 하는, 거의 본능적인 욕망은 아직까지 끈기있게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들어 우리들은 이 광신적인 태도가 되살아나는 것을 목격했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이 구세주적 발상이 모순된 거짓말을 시종 잘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것 모두가 미국과 다른 여러 나 라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현저하게 방해하고 있는 것 이다.
- 만약 인권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 싶 다. 지금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
답: 그렇다면 미국 외교정책의 전형적인 특징을 한 가지 더 지적해두 자. 이것은 미국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힘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것이다. 내가 미국의 태도를 이해하는 바로는, 약한 나라는 미국인의 파트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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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없다. 미국인은 강한 자들에게만 경의를 표한다. 이것은 적어도 당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소련 에 대해 안고 있는 불만의 초점은 소련이 강력해져서 미국을 능가하게 되었다고 하는 점인데, 소련이 약하다고 해서 미 ㆍ 소관계가 잘 될 것이 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소련에게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는 지금보다도 훨씬 나빠질 것이다. 덧붙여서 소련이 미국의 압도적인 힘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대두된 덕택에 독립과 행동의 자유를 얻은 많은 나라에게 있어 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미국이 본래 공격적인 나라라고 말하려는 것 은 아니다. 미국인을 인간으로서 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은 이처럼 힘을 독선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 다른 국가라고 말하고 싶어하지만, 역시 그것은 미국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피부로 느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 그러나 소련이 강대해졌다고 해서 미국과의 관계가 밀접해진 것 도 아니다.
답: 그렇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소련이 약했다면 양국 관계는 더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소련을 미국의 기준에 따라 다시 만들려고 하는 그릇된 기대를 높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말을 해 도 나는 여전히 상황이 바뀔 것을 바라고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에서도 국제관계 전반에서도, 힘에의 배려가 하는 역할이 마침내에는 더 작아질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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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은 전쟁의 무서움을 체험하지 않았다
- 나는 20년 동안 미국 각지에서 강연할 기희가 있었는데, 우리들이 나치의 화란점령 중에 경험한 전쟁의 의미나 전쟁의 무서움을 미국인 청중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답: ‘미국 시민이 전쟁의 무서움을 직접적인 체험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미국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있어서 도 위험한 일이다’ 라고 언젠가 군나르 뭐르달 (Gunnar Myrdal) 이 지적한 일이 있다. 분명히 유럽을 황폐화시키고, 화약에 대한 유럽인의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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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부터 바꾸어버린 두 차례의 대전에서 미국은 부자가 되었다. 5천 만 명의 인간이 죽은 제 2 차대전에서도 미국인 희생자는 소련인 희생자 의 2% 정도였다. 레닌그라드에 있는 피스카레프묘지에만도 제 2 차대 전에서의 미국의 전체 희생자를 웃도는 전사자가 누워 있다. 우리 나라 에 있어서 그 전쟁은 경제력의 엄청난 파괴를 의미했는데, 미국은 바로 그 전쟁에 의해서 대불황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다. 나는 물론 전쟁에서 미국이 치른 희생이 다른 나라보다 작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며, 더 희생을 하라고 미국에게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견 지에서 말한다면, 평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 헤이그 국무장 관의 말에서 상징되는 것처 럼, 전쟁에 대한 무모한 태도가 좀더 사그러 지기를 미국인에게 기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인 측면에 대해서 말한다면 미국인의 사고에는 역사적 경험이 약간 부족하기 때문에 중요 한 안전판이 빠져 있다고 한 뮈르달의 의견에 나도 동감이다.
- 지난 30년 간 미국을 연구한 유럽 사람으로서 말을 한다면, 이것 은 모두 미국의 자기중심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 하고 싶다.
답: 그렇 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에게 있어서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본다든가, 심지어는 미국의 행동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는 것조차 무척 어렵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이나 보아 왔다. 오늘 날 가장 중대한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일부 미국인 들의 미욱한 의도나 기득권뿐만이 아니라, 미국인이 다른 사람의 입장 에서 사물을 볼 수 없다는 점에도 원인이 있다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가령 소련의 군사력을 평가할 때, 소련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위협 은 무시하고, ‘소련의 위협’ 만을 부르짖는 미국의 행위에 대해서는 앞 서 말한 대로다.
미국은 또 동맹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록 히 미국으로서 이해가 모자라는 것은,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 유럽이란 미국이라고 하는 중핵지역을 지키는 전진기지도 아니며, 작전수행을 위 한 멀리 떨어진 싸움터도 아니며, 오직 하나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활의 장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은 긴장완화나 소 롄과의 평화적 관계의 발전에 대해서 미국과 다른 태도를 가질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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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일이다. 서독인들에게 있어서 동방정책 (Ost-politik) 의 참된 의미를 이 해하는 데에, 지미 카터는 임기의 거의 전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서독 의 친구들로부터 들은 일이 있다.
과연 긴장완화라고 하는 것이 서유럽 사람들 모두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미국의 현 정권의 경우 얼마만큼의 시 간이 걸릴 것인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 1981년 9월 나는 화란의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의 인터뷰에 서 당시의 유진 로스토우 (Eugene Rostow) 군축국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레이건정권의 외교정책은 마치 도자기 상점에 잘못 들 어간 황소처럼 날뛰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 유럽인들은 모스크바보 다 워싱턴을 더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라고. 이 질 문에 로스토우는 분명히 움찔하는 표정이었다.
답: 당연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레이건 진영의 사람들은 냉전정책 이 유럽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을 한증 미국에, 충실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워싱턴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핵운동이 서유럽을 흔들어대니까 그들은 먼저 이것을 소련의 선전 탓으로 돌렸다.
미국의 제 3 세계에 대한 무지는 더욱 심하다. 미국인은 제 3 세계 사람 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인접국가인 엘살바도르나 니카라과, 과테말라, 파나마의 사람들, 혹은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일 것이다.
내가 가끔 생각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역사상에 있어서 예외적으로 행운아였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운이 좋아서 보다 더 곤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층분한 이해나 진정한 동정을 갖지 못하는 것 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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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과 원조
- 그러나 미국의 자선계획이나 무상원조계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 각하는가?
답: 분명히 많은 자선단체가 있다. 그들 중에는 빈곤을 경 감하는 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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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이 되는 곳도 있고, 인도주의적 활동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자선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는 이것을 양심의 아픔을 덜고, 싫증이 날 정도로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더 큰 기쁨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흔해빠진 비난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경우에는 동 기가 전혀 다른 데 있기도 할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훌륭한 동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선활동의 대부분은 순수 무사 (無私) 의 기독교적 나눔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대개는 미국의 기성세대의 경제적 ㆍ 정치 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1980년 캄보디아에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미국이 한 일이라 고는 국토의 태반을 장악하고 폴포트의 학정이 초래한 죽음과 황폐로부 터 이 불행한 나라를 구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던 캄보디아 정부에 대한 구호물자 수송을 방해한 것뿐이다. 동시에 미국은 태국 국경 가까이에 있던 폴포트의 잔당에게 ‘관대한 원조’ 를 할 권리가 있다고 소 리높여 주장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캄보디아 정부가 주민 의 고통에 무관심하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의 미국의 행동은 인도적 배려의 표시라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역에 있어서의 미국의 지정학적 ㆍ 전략적 이해관계를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정연하게 똑바로 보인다. 그리고 캄보디아인의 비극적 체험에 대한 공분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 책임의 대부분 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은 흔히 잊혀지고 있다. 1970년 캄보디아를 무력 침공하고 그 내정에 간섭해서 노로돔 시아누크 (Norodom Sihanouk) 공의 중립주의 정부의 전복을 가능케 했던 미국은 사실상 폴포트 정권 출현 에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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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시금 긴장완화의 시대를
- 소련과 미국의 관계로 되돌아가 이야기하자. 다워적이고, 조직화 가 덜 되고, 때로는 매우 거칠기도 한 사회와 질서가 있고, 중앙집권 화한 사회의 사이에 진정한 공존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답: 한 사회가 거칠어질 때, 그런 사회와의 공존은 어떤 사회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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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어렵다. 그러나 국가적 히스테리 증상은 예외적인 사태라 쳐서, 지금은 접어두고 생각해보자. 미국의 다원성에 대해서 말한다면 최근 의 긴장완화의 후퇴를 그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긴장완화를 스케이프 고우 트로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미국 사회가 복잡하고, 이질적이고, 몇 가지 면에서는 지방분권적인 것을 알고 있다. 우리들은 그러한 미국사회와 공존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 그러나 미국 의회가 좀더 규율이 잡혀서 SALT II 와 같은 긴급한 문제에 있어서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답: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현실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의회는 미국의 정치구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의회와 관계를 맺어왔던 경험에서, 우리들은 현 재 워싱턴에 있는 정치과정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인 구의 극히 일부만을 대표하고 있는 소수의 상원의원이 미국 전체의 사 활이 걸려 있고, 때로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조약을 저지하는 것과 같은 절차가 현명한 것인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느끼기도 한다 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국민의 70% 이상의 다수가 SALT II 를 지지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은 10~1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절차는 미국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헌법상의 문제라고 이해하고 우리들은 그것을 문제로 삼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긴장완화는 워싱턴에서의 진지한 정치적 토론을 견디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들은 확신하고 있다. 오히려 토론을 거친다면 그 만큼 긴장완화의 입장은 강화될 것이다. 우리들 의 견으로서는 무역문제 나 전략무기제한협정에 있어서 문제를 만들어낸 것은 의회가 지닌 헌법 상의 특권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점은 미국의 보도기관에서 널리 볼 수 있는 독단적인 반소주의가 언론자유의 원칙 탓이 아닌 것과 같다. 문제 는 미국의 다원성이 군산복합체와 같은, 확고한 기반과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권력 엘리트세력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긴장완화의
기초를 위태롭게 하고, 소련과 미국 의 관계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 심지어 국가이익 전반을 대표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세력의 맹공격에 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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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대항하지 못해서 긴장완화는 지금 곤란에 빠져있는 것이다.
- 그러나 미국은 결속이 잘 안되는 탓에 모든 힘을 동원해서 소련 과의 격렬한 경쟁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논의도 있는데.
답: 그 논의는 실은 미국이 소련과의 공존에 동의를 하려면, 그전에 소련쪽이 지금보다 사회조직이 해이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을 살짝 뒤집어놓은 것이다.
진보파는 대체로 소련이 ‘보다 더 엉성해지기’ 를 바란다. 보수파는 미국이 지금보다 ‘더 조직화되기’ 를 원한다. 극우파는 두 가지 모두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조직화해 나가는 것 은 미국의 자유이지만, 소련이 헌법상의 체제나 사회를 어떻게 조직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들에게 맡겨놓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 같이 지나치게 단순한 비교는 이미 지적한 중대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진정한 경쟁이란 사회체제간의 경쟁이다. 결국은 현대의 인간에게 행복하고 보람찬 생활을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의 능력을 둘러싼 경쟁 인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미국인들이 자 원의 총동원을 입에 담을 때,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나 노인을 위한 지출을 늘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평화공존이나 평화적 경쟁이 아니다. ‘총동원’ 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군사 적 의미는 상징성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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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채찍의 회유책
- 소련쪽이 미국보다 상대편과의 대결을 위한 준비가 더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데.
답: 우리 사회쪽이 보다 더 단결되어 있고, 국가 목적에 결집하는 능력도 높기 때문에 국가정책을 일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준비가 미국 보다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국가정책이라 함은 긴장완화의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대결의 경우 피할 수 없는 조치 가 될 수도 있다. 동시에 미국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인은 긴장완화보다도 대결의 시기에, 그리고 애국주의나 호전적 강경론이 부르짖어지고 ‘해리, 그 녀석들을 해치워버려!’ 라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할 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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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훨씬 더 잘 된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기에 이것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결정적인 분석을 해보면 오늘의 대결에 즈음해서 힘을 결집하는 그러한 능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만일 사태가 최 악의 지경에 이르지 않고 조만간에 긴장완화의 시기가 계속된다고 한다 면 이러한 능력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최악의 사태가 은 다면 사전의 준비태세나 단결이나 국민감정 등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 지난날 브르제진스키 밑에 있었고, 그 뒤에 국무성의 정치군사국장을 지낸 레지날드 바쏠로뮤 (Reginald Bartholomew) 로부터 들은 이야 기인데, 백악관은 가끔 소련이 미국의 사나이다움을 시험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고 하던대.
답: 미국의 정치가가 그처럼 사나이다움 - 이 경우 개인으로서의 사 나이다움이 아니고 (물른 이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의미로서의 사나이다움 - 을 마음에 두는 것을 나는 가끔 이상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강하고 사나이다운 모습을 꽤 좋아하는 것 같은데, 투우장의 투우사처럼 어깨를 우쑬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인기만을 노리는 게임은 국가의 정책에 있어서 지극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
일이 있을 때마다 세계를 향해서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는 것은 목표가 될 수 없고 목표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러한 태도는 국가의 문제에 대해서 그릇되고 비현실적인 접근을 고무하기 쉬울 따름아다. 정책결정에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혜와 자제이며,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이며 또 실현이 가능하고 달성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 이다. 왜냐하면 정책결정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실현이 가능한 것을 찾아내는 기술이었으며 앞으로도 그 점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며, 핵시대의 오늘날 특히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일반 대중은 아직 충분히 교육되어 있지 못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책을 국민들에게 쏟아넣오려 고 하는 정치가들은 대륙간탄도유도탄 (ICBM), 폭격기, 항공모함과 그밖 의 병기로 상징되는 과도한 사나이다움에의 갈망을 걸핏하면 올려 세우 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쉽고, 머리도 용기도 필요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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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러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당치 않은 것인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편한 일이다. 평화나 경제적 번영, 에너지, 그밖의 전세계적인 문제 등 중요한 문제들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 레슬리 젠브 (Leslie Gelb) 는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하며, 소련은 그것을 사전에 알아야 할’ 시기라고 말한 바 있다. 겔브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소 련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당근은 언제나 정해놓고 싸구려였으며, 채찍은 매번 불충분했다. 상대방에게 주는 것은 너무 적었고, 겁을 줄 만한 힘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답: 솔직히 말해서 레슬리 겔브에게는 적당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 만 이 당근과 채찍의 비유는 오늘날의 문제를 논하기에는 좀 단순한 방 법이다. 겔브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미국이 충분히 크고 달콤한 당근을 내어놓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마침내 그 당근도 보잘 것 없이 작아지고, 마지막에는 미쳐 날뛰도록 화를 내면서 미국 정 부는 그 얼마 남지 않은 당근조차도 잡아채고 말았다. 겔브의 비유에 있어 커다란 채찍에 대해서 말한다면, 물론 그런 것은 없었다. 있었다 고 한다면 전쟁인데, 그것은 자살과 같은 것이었다. 미국의 손아귀 에 있던 보다 작은 채찍들은 순식간에 모두
사용되어 없어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은 이들 채찍이 양날의 칼이었으며 소련에게 준 상처에 못지 않는 상처를 미국도 입었다는 점이다. 곡물금수나 무역중지 같은 것을 생각해보자. 겔브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런 것들 이라고 생각되는데, 여기까지에 대해서는 겔브에게 반론을 제기할 의사 는 없다. 이런 관계에서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일부의 문제는 어느 범 주 - 당근인지 채찍인지 - 에 속하는지 명백한 혼란이 온다. 가령 SALT II 조약의 경우를 보자.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로 매듭 지어졌든지 간에 이 협정 전체는 결국 소련을. ‘응징’ 하자고 하는 맹렬 한 복수심의 희생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때문에 두 나라는 모두 손해를 보게 되며 그것도 뜩같은 정도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정책의 핵심을 당근과 채찍으로 바꾸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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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는 발상 그 자체가 오늘날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어떤 나라도 매 수나 협박에 굴복해서 의국으로부터 정책상의 지시를 받아들이게 되어도 좋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미국과 소련은 그러한 사태에 빠져드는 것을 지금까지 피해 왔으며, 앞으로도 피해 갈 것이다. 다시 말해 당근과 채찍 논리는 현대의 주권국가가 도저히 용인 할 수 없을 정도의 회유책이기 때문에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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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선전된 경제제도의 효과
- 미국과의 경제관계에 관한 소련의 이해를 생각하면 카터 대통령이 실시해서 레이건 대통령에게 인계한 경제제재가 하나의 채찍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답: 대미 무역에서 얻고 있는 소련의 경제상의 이익은 대체로 많이 과장되고 있다. 가령 1981년 소련의 대외무역에서 점하는 미국의 비중은 1.7%에 불과하며, 곡물을 제외하면 0.5% 이하로 떨어진다. 따라서 무역제재는 소련 경제에 있어서 지극히 미미한 영향만을 줄 뿐이다. 특히 제재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소련은 다른 곳에서 메울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또 중서부의 농민이나 많은 관련 기업이 증언하듯이 이 제재조치가 미국에 있어서도 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 점은 순수한 경제적인 이해득실을 초월한 데에 있다. 우리들은 언제나 무역과 경제적 관계를 긴장완화의 기초를
단단히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 해왔다. 미국은 사회주의 제국과의 무역관계를 ‘응징’ 을 목적으로 한 냉전의 무기로, 혹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정치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일이 지난 수년 동안 점점 더 많아졌다.
- ‘자본은 대륙간탄도유도탄과 같은 강력한 무기다’ 라고 미 국의 저명 한 은행가인 펠릭스 로우하틴 (Felix Rohatyn) 은 최근 말한 바 있는데.
답: 그 점에 대해서는 먼저 소련은 혁명 당초부터 외부의 자본가가 그 경제적 영향력을 우리들에 대한 무기로싸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오랫동안 우리들은 경제적 봉쇄나 경 제적 압력을 경험해 왔다. 소련이 서방측에 대한 지나친 경제의존을 피 하면서 자체의 경제나 대외무역을 발전시켜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국제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편성되기까지에는,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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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헌다고 생각하고 있디.
최근에 미국에서는, 미 ㆍ 소간의 무역을 ‘적을 도와주는 것’ 이라고 하 는 견해가 보편화된 것 같은데, 위와 같은 이유에서 이것은 참으로 바 보스런 것 이라고 생각한다. 미 ㆍ 소간의 무역 관계가 그런 식으로 작용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무역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반적으로 이 로우하틴의 논리 그 자체가 위험한 시대착오이며, 오랜 제국주의적 발상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점차 복잡해지고, 깨지기 쉬우면서도 상호의 존의 도가 강조되는 오늘의 세계에서, 전면적 인 경제전쟁 의 길을 밟는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게 있어서도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국제적인 정치 ㆍ 경제관제의 기반 그 자체를 뿌리로부터 뒤흔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긴장완화를 위한 국제경제관계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논쟁의 여 지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나 자신은 그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국제경제관계를파괴해버리면, 국가간의 긴장증대를 피할 수 없다고 하는 점 에 있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로우하틴의 견해도 일 리가 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서 가능한 한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것에 목적 을 두는 방법이 의미를 갖는 것은 장기적 목표를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이나, 적대와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우에만 있을 수 있다.
- 국가간의 행동이 이전보다 제어하기 어려워지고, 혼란이 심해졌다 고는 생각하지 않는지? 만약 그러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면, 위험은 분명해졌다고 보는데.
답: 일국의 외교정책을 외부에서 제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 싱황이 좀더 위험해졌는지 어떤지는 별개의 문 제 이 다.
지난날에는 세계가 몇 개의 제국으로 분할되어서, 각각엄격하게 통 제된 체제로 움직이고 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는 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전쟁에서의 희생이 커졌다. 소련에서 는 평화와 국제적 안정의 유지에는 국가의 주권과 국가간의 평등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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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건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주권과 평화를 전제로 하 고 나서야 통제와 저지를 위한 하나의 새로운 국제체제, 어떤 정책을 누르고,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국제적 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제의 권한은 어느 다른 국가나 군사블럭 이 가져 서는 안될 것이다. 이같은 체제는 국제법 내지는 국제연합과 같은 집단 적 안전보장기구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다시 제국주의 시대로 되돌아가서 큰 불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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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 대한 편집(偏執)
- 그러한 체제가 이루어진다면 어떤 보상과 처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답: 보상으로서는 종래 보다 많은 자원을 국내개발에 돌릴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전보장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국제적 협력을증진함으 로써 직접적인 이익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처벌에 대해서 말한다면 만약 어느 나라가 지금 내가 언급한 것과 같은 이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든가 이 안전보장체제를 해치는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은 그 기부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든가 이 안전보장체제를 해치는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은 그 나라 스스로 벌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다. 처벌의 다른 형 태로는 전쟁 의 위험성 증대와 세계 여론의 지탄을 들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국제연합헌장에
규정되아 있는 것 같은 어떠한 집단적 조치를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이 새로운 국제체제의 안전은 광범위한 국가간의 상호의 존에 의해서 보호될 것이다.
- 서방측은 소련 외교정책의 어떤 것을 이해하고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답: 이 질문을 받으니까 소련에 대한 모든 부당행위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리고 싶어진다. 그러한 불만에는 지나칠 정도의 타당한 근거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을 말하는 것은 피하고 주요 문제의 요점만을 설 명하고자 한다.
기본적인 문제는 오해라든가 이해가 모자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태도이다. 서방측은 오랜 기간에 걸쳐 소련의 존재 그 자체를 참을 수 없었다. 오늘에 있어서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소련에 대해서 정말로 편집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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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처럼 완고하게 현실을 거부하는 태도야말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며, 오해를 낳는 주된 원인이다.
리처드 파이프스나 혠리 잭슨(Henry Jackson) 상원의원 같은 사람들 의 논의에 대해 키케로 이상으로 유창하게 반박을 할 수가 있다. 그러 나 그들의 견해는 반소주의의 철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그 들은 설득을 당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은 오늘날 에는 소수파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극단적인 예외에 지나지 않지 만,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그같은 정치적 태도에 중독 되어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의 태도가 논리적 결론에 이르게 되는 점은, 소련이나 다른 사회주의 제국의 평화공존이라는 생각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서방측에는 이러한 사람들과는 다른 정치적 지도자들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긴장완화는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폭넓은 문명적 관점에서 사물을 생각한다. 그들은 보다 더 먼 장래를 내다볼 수 있다. 그들은 소련사회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것에 관제 없이 궁극적으로 소련과의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해할 수 있을 만 큼 분별이 있는 사람들이다.
- 몇 사람 이름을 들어줄 수 있는가?
답: 실제의 정책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뛰어난 두 사람을 든다면 모름지기 드골과 브란트일 것이다. 물론 이 두 사람을 같은 범주에 넣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치적 신념에 있어서도 그밖의 점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공통된 점은 편견과 틀에 박힌 생각을 타파하고, 많은 서방측의 동시대 사람들보다 현실적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 이 있었다는 점이다. 두 사란은 자국의 기본적 이익을 간파하면서도 소련의 이익을 무시하려고 치지는 않았다.
그들의 이같은 현실파악 대한 한 가지 근거는 아마 두 사람새네 저 쟁의 장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브란트는 나치 독일에서 쫓겨나서, 나치와의 싸움에 참가했다. 드골은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해방을 의해 싸운 불굴의 투사였다. 그러한 경험이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는지도 모 른다. 서방측이 소련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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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전쟁에 대한 소련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제 2 차대전이 소련 인민들 에 게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는 서방측 사람들, 그 중에서도 미 국 사람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서방측에서는 가끔 이런 말 이 들린다. 즉, 소련은 지난번 전쟁에서 2천만의 희생자를 낸 바 있기 때문에 핵전쟁에서 또 2천만이나 4천만의 희생자가 나와도 충분히 해나 갈 수 있는 배짱이 있다고 말이 다.
- 그러한 생각의 이면에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답: 소련은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또 희생이 크다는 사실을 알면 서도 겁내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자동차 사고로 큰 부상을 한 사람에 대해 큰 부상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난 폭한 운전을 마구 할 것 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 이다. 현실적으로 있올 수 없는 일이다. 제 2차대전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빛나는 승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평화의 거룩함을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확실하게 소련 국민에게 가르쳐 주었다. 평화야말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최우선의 과제이다. 때문에 평화와 긴장완화정책은 소련 국민들 사이에 확고하고 광범한 지지를
얻고 있다.
- 그러한 평화정책은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개성을 반영한 것인가?
답: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개인적으로 이 정책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동시에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이것이 당 전체의 정책이라는 것을 줄곧 강조했다. 이것은 수차례나 당대회에서 지시되었으며 소련공산당 중앙 위원회가 수행하고 있는 정재인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항을 덧붙이고 싶다. 우리 국민이 평 화를 추구한다고 하는 것은 압력에 굴한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전쟁을 증오하지만 자존심 과 애국심 이 강하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들의 안전을 위협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 위협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점은 미국에서 이해 해 주어 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 국에서는 소련을 다시 한 번 군비경쟁에 끌고 들어가면 소련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이 다. 시금 강하게 싹트고 있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소련의 GNP는 미국 보다 작은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보다 큰 어려움도 견디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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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문제에 대한 외국의 간섭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민감성의 문제이다. 1917년 이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발전을 좌절시키고 방해하려 는 온갖 방식의 외부적 기도에 직면해왔다. 우리가 1917년에 택한 노선을 따르는 것을 막기 위해 무력개입으로부터 교묘한 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외 부의 간섭에 대해, 정말로 적대적인 환경을 경험해본 일이 없는 나라들보다도, 우리가 훨씬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겁을 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중분 한 힘과 자신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적 의와 파괴적인 목적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는 경 향이 있다.
- 지금 이야기는 소련 지도층의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 가, 아니면 소련의 일반 여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
답: 양쪽이다. 사실은 지금의 질문에서 소련의 정책이 오해를 받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 즉 소련에 있어서의 여론의 역할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소련에서 여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든지 지도증의 태도는 일 반 시민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결정된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서방측에게는 아주 보편적인 것이다. 이것은 정반대이다. 소련 의 여론이 그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 이 미국의 경우와는 다른 지 모르겠으나, 여론은 소련의 정책결정 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분명히 미국의 여론처럼 화려한 절은 없지만 영향력은 큰 것이다.
일부의 미국인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소련 당국이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소련 대 중은 언제 나 자기들을 좋아할 것이 틀림 없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자기들이 오늘은 제멋대로 무뢰한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내일 한두 가지 부드러운 말을 하거나 한두 군데 문을 열어주면 만사는 잘 되어가고, 나쁜 짓들은 모두 잊혀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지극히 자기맹신적 태도인 것이다.
우리들은 실제로 여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만약 외교정책을 실질적 인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여론에 이 정책의 정당함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뿐만 아니라 여론은 당과 정부의 정책이나 견해를 형성하 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소련의 여론에 대해서 불신이라고 하는 나쁜 씨앗을 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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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에 걸쳐 미국이 보인 일부 행동들은 참으로 언어도단의 것이었다.
- 이 대담에서 일관하고 있는 요점의 한가지는, 소련을 있는 그대로 보아달라, 소련에 대한 인식을 좀더 현실에 가깝게 해주었으면 하 는 미국인들에 대한 바램 같은데.
답: 그렇다. 이미지와 현실을 혼동하는 데에서, 언제나 국제관계에 붙필요한 어려움이 생겨났다. 이래서 또다시 미국의 자기중심주의로 이야기가 되들아가는데, 미국인들의 눈에는 선이라는 것을 자기네가 독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만약 미국에 악이 있다면 그러 한 악은 미국 이외 의 어느 나라에도 다 있는 것으로 여긴다. 가령 미국 이 군산복합체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면, 자동적으로 소련에도 동일 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버린다. 소련의 경제체제가 전혀 다른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라든가, 군산복합체가 미국 내에서 특수 한 권익단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유가 미국의 정치, 사회체제의 독특한 특징 이라는 사실 등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서방측의 표준적인 취급방법도 오해의 한 가지 예이다. 소련의 생활양식을 가난하다든지, 보잘 것 없다든지 뒤 떨어져 있다고 말하는 등 끊임없이 헐뜯고 있다.
- 그러나 소련의 생활수준이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보다 낮은 것 은 분명 하다.
답: 풍족한 서방측 사람들에게는 신기할 것도 없는 일부 물자가 소련 에 풍부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인정 한다고 해서 별로 부끄럽다고는 생 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미국인 들이 러시아인들에 대해 수다스럽게 은혜나 입힌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으면 화가 난다. 말할 수 없는 곤란을 뛰어넘어 러시아인들이 성취해 낸 일에 대해서 커다란 경의를 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우리들의 생활 수준은 향상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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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계엄령을 둘러싼 평가
- 서방에서는 소련에 대한 강경노선아 차츰 강해 지고 있다. 서방측 이 일치단결해서 소련에 맞설 때야 비로소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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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폴란드에서는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소련에 가르쳐줄 수가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답: 지금 질문의 표현법은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 서방 각국에 반소 연합전선을 구축하려 는 시도가 있다는 것은 분명 한데, 그러한 시도가 얼마만큼 현실성이 있는 것이며, 그 동기가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는 중 대한 의문이 있다. 동기는 공격적인 것이며 방위적인 것이 아니다. 미 국이나 미국의 일부 동맹국들의 정책에 반소적 경향이 강해지기 시작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사태 훨씬 이전이었다는 것, 따라서 아프가니스탄 사 태가 반소 경향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실들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폴란드 사태에 대해서 말한다면,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폴란드 국내분쟁의 평화해결,
조기해결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사태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잘된 일” 이라는 입 장에 서 폴란드 정세를 다루었다. 폴란드 정세가 악화되면, 긴장완화를 완전 히 붕괴시키고 동맹국들을 부추기고 미국인들을 매우 군국주의적이 고 모험적인 정책에 결집시킨다고 하는 강경파의 목표를 한꺼번에 실현시킬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가 찾아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1981년 I2월에 폴란드에 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현지 정세 가 진정으로 악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나?
답: 계엄령은 결코 기분좋은 것은 아니며, 폴란드의 지도층도체엄령 을 실시 하지 않고 사태가 끝나기를 바랬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야루젤스 키 장군이 취할 수 있었던 선택의 폭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만약 계엄령을 시행하지 않았더라면 폴란드에 무슨 일이 일어 났었을 것인가? 경 제가 붕괴되고 내전이 시작되어 혼란과 유혈사태에 빠졌을 것이다. 그 것에 비하면 계엄령은 아주 작은 악일 것이다.
계엄령시행 후 미국이 플란드(와 소련)에 대해 취한 정책은 기旦한 인 상을 남겼다. 물란드의 지도층과 플란드의 동맹국들이 국제적 위기를 회피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미국정부를 화나게 만들었으며 보복 을 하도록 했다. 더구나 미국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그와 같은 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작수했다. 분명히 미국은 폴란드 사태를 국제화하려고 꾀했던 것이다.
- 폴란드의 계엄령은 헬싱키협정의 위반이며, 얄타협정으로의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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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서방측에서는 풀이하는 경향도 있다.
답: 그런 사고방법은 실로 기가 막힌다. 헬싱키협정을 얄타협정에 대립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구약성서 의 잘못을 증명하기 위해 신약성서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애시당초, 얄타ㆍ헬싱키 양 협정은 모두 같은 기원에서 만들어진 것 이다. 즉, 제 2 차대전과 히틀러의 패배 그리고 소련 국민을 포함한 유럽 제국민의 막대한 희생의 결과로써 생겨난 유럽의 정치구조를 명문화 한 것이 양 협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 협정은 피로 쓰여진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적당히 마음내키는 대로 다룰 수 없는 것들이다. 그 협정은 동서관계의 또 하나의 추세를 구체화한 것이다. 결국 평화공존 의 추세이며, 서방측이 소련과 그 다음에는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을 서 방 제국과 마찬가지로 안전보장에 정당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상대로서 그리고 국제정치에의
독립적이고 대등한 참가자로 인정하는 추세 인 것이다.
폴란드 정세와 관련해서 미국이나 다른 NATO 제국이 취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련의 제재나 최후통첩, 협박이 평화공존의 기본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권국가의 정부가 그 국가의 사회체제를 지키고 폭력에 의 한 체제전복을 막기 위해서 취한 조치, 즉 내정문제에 관계되는 것이 라고 간주되어온 행동에 대해서, 징벌로써 제재가 가해진 것이다. 헬싱키협정이 이러한 타국의 내정문제에 간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명백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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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치도 않은 심리적 압력
- 그러나 다시 한번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것은 계엄령이라고 하는 것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가혹한 체제라고 하는 점 이다. 서방 제국의 국민이 계엄령 체계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이다.
답: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하고자 한다. 계엄령을 유쾌한일이과고 생 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폴란드 지도층도 분명히 그것을 인정 하 고 있고 마지막 수단으로써 이 조치를 취한 일, 이것이 오래지 않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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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치가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며, 유럽의 평화를 위협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반대로 중대한 국제위기로 발전했을 지도 모를 매우 극적인 사태의 위협이 이 조치에 의해 해소된 것이다.
폴란드 사태를 보는 ‘서방측 대중’ 의 태도에 대한 당신의 평가가 정확한지 어떤지는 모른다. 서방 제국의 정부나 매스컴이 대대적인 심리 적 압력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응은 적어도 신중했다고 생각 한다.
서방 제국의 정부, 특히 미국정부의 태도에 대해서 말한다면, 이것 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2중성의 모범적인 사례연구감이었다. 래이 건 정권은 한편에서는 폴란드에서의 소위 ‘인권침해’ 를 소리높여 비난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엘살바도르나 과테말라의 피투성이 독재정권 을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친미군사정권과 더불어, ‘억압의 정도는 보 통’ 이라고 보고 지원할 가치가 있는 정부라고, 적극적으로 지자하고 있다. 사람이 어지간히 바보 같지 않고서는 레이건 정 권의 성실성을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물론, 노동조합에 대한 레이건 정권의 참모습도 주 지 하는 대로이다.
2중기준(double standard)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칠레, 한국, 터키 외 에 많은 국가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폴란드 정세와 이들 나라에서의 쿠데타를 놓고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폴란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 계엄령은 폴란드의 합법적 정부에 의해 헌법의 규정에 따 라 시행된 것이다. 폴란드의 국회는 해산되지 않았으며, 체포된 사람들 의 수는 극히 적었다. 법률을 위반해서 유죄가 인정된 사람들에 대한 기소는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행해졌고, 관결도 지극히 가벼운 것 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돼를, 가령 1973년 칠레에서 일어났던 유혈사태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이상의 문제들을 지적한 지금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누구 도 미국이나 서방의 지배층에 대해 폴란드의 공산주의자나 폴란드의 사회주의를 옹호해 온 사람들을 편들어 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양측의 노선은 계급의 이해, 동정, 세계관을. 반영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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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특히 핵시대에 있어서의 정책결정은 상당히 다른 배려 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가령, 이런 저런 뇌역적인 사건들이 어떻게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사건이 국제적 위기로 발전해서 초강대국간의 군사적 대결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대결에까지 이르는 것을 방관해야 할 것인지 어떤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국제관계에 참가하고 있는 유력한 나라들이 그러한 배려를 지침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겨어도 고려에 넣지 않았더라면 2차대전 이 후의 세계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것인가? 만약 이러한 나라들이 맹 목적으로 본능이나 동정, 반감에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이러 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세제는 가장 위험 한 분쟁 의 진흙구덩이 속에 구해낼 길이 없을 정도로 빠져들었을 것이며, 인류 는 핵파멸의 최후경계선을 거의 틀림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이러한 진 리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으로 해사 사회체제가 다른 국가간의 평화공존 의 원칙에 막을 수 없는 활력이 주어졌던 것이다.
소련은, 폴란드 정세에 대해서도 다른 지역의 정세에 대해서와 마찬 가지로, 국제정세에의 영향을 포함해서, 모든 측면을 충분히 고려한 다 음에 자신의 태도를 결정했다는 것을 강조해두고 싶다.
소련은 대체적으로, 심지어는 미국과 NATO의 적대적인 행동에 직면 해 서조차도, 긴장을 증대시키거나 데탕트를 해칠 우려가 있는 조치를 피 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일을 다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아마도 그것이 소련이 서방보다 긴장완화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는 여러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 이다.
답: 알다시피 그 개념은 양면적인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평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나는 그것을 경의의 말로 받아들인다. 전쟁광이라고 비난받기보다는 평화광이 란 비난을 받는 것이 낫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개념은 소련이 얼마나 평화적인가 하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 다. 그 목적은 대 체로 [사악하고 냉소적인 것이다. 즉, 소련이 서방측보다 긴장완화를 더 필요로 한다면, 서방측은 그 값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려운 협상, 까다로운 양키적 거래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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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본을 논하면서 의약품 관매권이나 땅콩 판매권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상에서의 인간의 생존에 관해 이야기한다. 치사한 장사꾼 심리가 여기에 들어와서는 안된 다.
- 당신은 소련의 대미(對美) 인식이 미국의 대소(對蘇) 인식 보다 더 정확하다고 믿고 있다는 이야기 인가?
답: 차라리 보다 덜 부정확하다고 말해두고 싶다. 외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것이다. 미ㆍ 소관계에서는 각자가 상대방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인식의 정확도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 정확도는 상호이해와 밀접 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이해를 통해서 상호신뢰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핵전쟁이라고 하는 양국 관계의 최종적 붕괴를 막는 매우 중요한 방법의 하 나이기도 하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관계의 붕괴는 이성의 선택일 턱이 없고,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도, 최종적 목표의 평 가를 분명 잘못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 근년, 양국간와 상호이해에 전진이 있었다고 보는가?
답: 그 분야에서 비교적 전진을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긴장완화는 70 년대에 정치, 과학면에서의 접촉이나 문화면에서의 연결, 관광 및 시민 간의 교류 등을 해나가는 데 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은 첫 발디딤일 뿐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실제로 양국간에 긴장이 증대됨에 따라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상호인식이 그처럼 중요하다면, 이것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답: 간단하게 답을 낼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 국 우리들로서는 긴장완화 시절에 하고 있던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더 많이 하지 않으면 안될 것 이고 또한 더욱 알관성있게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정상적인 정치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편견이나 선입관을 뿌리뽑아내기 위해서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객관적 태도를 촉진시켜야 하며, 상대국-그 나라 국민, 문화, 정치생활-에 영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양 국간에 갖가지 수준에서의 접촉을 넓히고 대화를 계속할 것을 장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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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긴장완화의 방식을 선택했을 당시 시작했던 것 을 계속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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